Q. 조선시대의 왕의 이름과 순서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은 27명의 왕이 계승해 519년 존속되었습니다.태조, 정종, 태종,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연산군, 중종, 인종, 명종, 선조, 광해군, 인조, 효종, 현종, 숙종, 경종, 영조,정조,순조, 헌종, 철종, 고종 , 순종 순입니다.
Q.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사상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제자백가란 여러 학자와 수많은 학파라는 뜻으로 춘추전국시대 주요 제자는 공자, 맹자, 노자, 장자, 한비자, 상앙 등이 있습니다.유가- 인과 예를 중시하는 학파로 유교로 발전, 선구자는 공자와 맹자입니다.도가- 자연을 본받는 생활을 주장한 학파로 도교로 발전, 노자 , 장자가 있습니다.법가- 엄격한 법치주의를 주장하는 학파로 통일 제국 진나라의 통치이념으로 발전, 한비자, 상앙 입니다.묵가- 차별없는 사랑과 능력에 따른 인재 등용과 상호부조를 주장한 학파로 묵자가 있습니다.병가- 군사력과 정치, 외교, 경제 등 처세 전반에 걸친 가르침을 강조한 학파고 선구자는 손자 입니다.
Q. 사마천은 어떤 인물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사기의 저자로 자 자장, 섬서성 용문시 하양에서 출생합니다. 부친 사마담으로 사마천이 7세 때 아버지가 천문 역법과 도서를 관장하는 태사령이 된 후 무릉에 거주, 사마담은 아들 사마천에게 어린시절부터 고전 문헌을 구해 읽도록 가르쳤습니다.사마천이 약 20세가 되던 해 낭중이 되어 무제를 수행하여 강남, 산둥, 허난 등의 지방을 여행 했습니다.BC111년 파촉에 파견되고 BC110년 아버지가 사망, 그후 2년이 지나 무제의 태사령이 되었고 태산 봉선의식에 수행하여 장성 일대와 하북, 요서 지방을 여행합니다. 이 여행에서 견문을 넓혔고 사기를 저술하는데 필요한 자료를 수집, 기원전 110년 아버지 사마담이 죽으면서 자신이 시작한 사기의 완성을 부탁, 그 유지를 받들어 BC108년 태사령이 되면서 황실 도서에서 자료 수집을 시작합니다.BC104년 천문 역법의 전문가로서 태초력의 제정에 참여한 직후 사기 저술에 본격적으로 착수, 그러나 그는 흉노의 포위속에서 부득이하게 투항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릉장군을 변호하다 황제인 무제의 노여움을 사 BC99년 사마천의 나이 48세가 되던 해 남자로서 가장 치욕스러운 궁형을 받습니다.사마천은 옥중에서도 저술을 계속, BC95년 황제의 신임을 회복해 환관의 최고직인 중서령이 되며 중서령은 황제의 곁에서 문서를 다루는 직책입니다. 그러나 그는 환관 신분으로 일부 사대부들의 멸시를 받으며 운신의 폭도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사마천은 사기를 완성, 사기 완성의 정확한 연대를 확인하기 어려우나 기원전 91년 사마천 친구인 임안이 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보낸 서한을 통해 추정이 가능합니다. 서한에서 사마천은 자신이 옥에 갇히고 궁형에 처한 경위와 그에 더욱 분발해 사기를 저술하는데 혼신의 힘을 쏟은 심경을 고백합니다. 이 편지 보임안서의 내용으로 보아 사기는 이 시기에 완성된 것으로 보입니다.사기의 규모는 본기 12권, 연표 10권, 서 8권, 세가 30권, 열전 70권 모두 130권 52만 6천 5백자에 이르며 사마천은 사기가 완성된 2녀 후 사망합니다.사마천은 자신이 저서를 태사공서라 불렀으나 후한시대에 들어 사기 라고 불리게 됩니다.
Q. 우리나라에서 목간은 언제까지 시용되었을까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간독 즉 목간이 언제부터 사용되고 언제까지 쓰였는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간독의 가장 빠른 기록은 은대의 갑골문자의 문자를 보아 죽간은 상고에서 기원후 3,4세기까지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즉, 종이가 발견되었다고 해 목간과 죽간이 무용지물 된 것이 아닌, 글쓰기 이외의 용도로 사용해랴 할 경우 종이가 그 기능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당시 행정문서는 각급의 단계로 내려갈때마다 내용이 추가되어야 하므로 이를 파일처럼 묶어 보관하기 위해서는 간독리 편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