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동양에서는 어떤 나라가 두부를 처음 만들어서 먹게 된건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두부의 탄생은 중국 전한 회남왕 유안이 연단술을 익히던 도중 우연히 탄생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이 설이 맞다면 기원전 2세기경 두부가 처음 생겼다는 것으로 다른 문헌에서 단 한번도 언급된 적이 없어 신뢰가 어렵습니다. 10세기 북송의 문헌이 되어서야 두부가 대중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모은다는 서술이 등장, 이를 미루어볼때 두부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10세기 근처 즈음으로 추정, 대대로 유목민족과 관계를 통해 양고기의 안정적인 유입이 있었지만 북송대에 들어 관계악화로 인해 양고기 유입이 줄면서 고기 수급이 줄었으므로 대체로 두부를 만들게 되었다는 유추가 됩니다.한국 문헌 중 두부가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최승로의 시무 28조인데 왕께서 미음과 술과 두부 국으로 길가는 행인에게 시주하나 작은 은혜는 두루 베풀어지지 못합니다. 라는 구절로 중국에서 처음 두부가 언급된 것이 10세기라 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고려에도 유입됨음 알수있습니다.일본은 12세기 때 나라 카스가 신사에서 唐府을 공물로 바쳤다고 하는데 이것을 음독으로 읽으면 토후, 즉 두부 입니다. 그러나 당시 나름 도시권이라 할수있는 긴키 지역 일부 정도에서만 알려진 음식인듯 하며, 임진왜란 당시 토사의 다이묘인 쵸소카베 모토치카가 병력을 이끌고 참전, 당시 포로로 잡혔던 박호인이 토사로 잡혀가게 되며 이때 박호인이 토사에 두부를 전파했습니다.
Q.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 유만수는 어떠한 인물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 전기 개국원종공신에 책록된 공신, 무신 입니다.본관은 문화, 자는 득휴, 고려 후기 최씨무인정권을 무너뜨리고 현달한 첨의중찬 유경의 후손입니다.공민왕 때 보마배행수, 장군 등 무관직을 거쳐 전법판서를 역임, 우왕 초 밀직부사에 올랐습니다. 1377년 조전원수가되어 이성계와 같이 황해도 각지에 침입한 왜구를 쳐 물리치고 공을 세웠으며 1378년 동북면에 파견되어 호구를 조사, 1383년 경상도원수 겸 합포도순문사에 임명되었습니다.합포원수로 있을 떄 왜적선 120척이 침입하매 정지의 응원을 받아 남해 관음포에서 적선 17척을 불사르고 왜적을 몰아냈습니다.1388년 이성계를 따라 위화도 에서 회군하여 개경의 숭인문 방어전에서 최영에게 패퇴, 그러나 이성계가 권력을 잡자 지문하부사로 승진합니다. 그러나 간관 허응 등이 유만수는 문음으로 재상의 지위에 올랐으나 어머니에게 불효하여 사람들이 천하게 여긴다. 소윤 최수첨의 집 처녀를 강간하였다. 공공연히 다른 사람들의 토지를 빼앗아 많은 사람들이 원통함을 품고있다 라는 점을 들어 탄핵해 파직되었습니다.1389년 절제사가 되어 이방원과 함께 해주에 침입한 왜구를 격퇴하여 궁시를 하사 받았으며 이어 문하평리상의 겸 응양군상호군이되며 문하찬성사에 이르렀습니다.1390년 위화도 회군에 협력한 공신 45명 중 포함되어 공신호를 받으며 1392년 1월 판개성부사, 4월 문하찬성사가 됩니다. 정몽주가 죽자 이성계 휘하의 270여명을 이끌고 정몽주의 가산을 몰수하고 그 당여도 모두 다스리자고 하자 왕이 따랐고 헌사에서 대간들의 탄핵 상소에도 불구하고 왕이 계속 유만수의 뜻을 따르는 것을 경계하자 같은 해 6월 유배됩니다.1392년 조선이 건국되자 개국원종공신에 더하여 판개성부사가 되며 1893년 회군공신 1등에 추록되며 문하시랑찬성사에 이릅니다.제 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에게 참살당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