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적벽대전과 연환계는 무슨 관계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연환은 고리를 연결한다는 뜻으로 36계 가운데 미인계,공성계, 반간계, 고육계 등과 함께 패전계에 속합니다.패전계는 패세에 몰린 싸움에서 기사회생해 승리를 이끌어내는 계책을 말합니다.적벽대전에서 방통은 북쪽 병사들의 배멀미로 곤란을 겪는 조조에게 연환계를 진언해 배를 전부 쇠사슬로 묵게했고 정욱은 이 상황에 화공을 걱정하지만 조조는 풍향이 맞지 않으니 걱정할 것이 없다고 하는데 이후 방통은 주유에게 불만을 가진 오나라 인사들을 회유해 조조편으로 만들어보겠다는 핑계를 대며 조조진영을 빠져나오기 직전 연환계의 정체를 모두 눈치챈 서서에게 뒤를 잡히게 됩니다.
Q. 높이뛰기에 덤블링으로 넘으면 안되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높이뛰기는 이전에 비교적 다양한 자세로 가로대를 넘었지만 현재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몸을 새우등처럼 뒤로 눕혀 뛰는 배면뛰기 입니다.이는 미국의 딕 포스버리가 1968년 처음 시도한 방식으로 기존의 등을 위로 향하게 한 뒤 뛰던 방식에서 변화된 방식으로 높이뛰기 방식의 판도를 역사적으로 바꿔놓았다고 말할수 있고, 거의 100%에 가까운 비율의 선수들이 이 방식을 채용하고 있습니다.높이뛰기 선수가 몸을 곡선 안쪽으로 더 기울이면 무게 중심을 많이 낮추게 되는데, 이 기울기의 정도는 도움닫기 곡선의 반지름과 도움닫기 속도로 인해 결정됩니다.도움닫기 곡선 주로의 반지름이 작을수록 , 도움닫기 속도가 빠를수록 높이뛰기 선수는 곡선 안쪽으로 기울게 되며 그만큼 무게중심도 낮춰지게 됩니다.세번 연속 실패하면 그대로 종료, 가로대가 떨어지거나 가로대 밑으로 지나가면 실패, 점프 시도 시 두 발이 동시에 떨어지면 실패, 제한 시간을 넘겨도 실패 입니다.기술과 관련된 경기 규칙은 발구름은 한 발로만 할 것 뿐입니다.
Q. 조선시대 공부하는데 계유정난이 대해 궁금해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계유정난은 1453년 수양대군이 왕위를 빼앗기 위해 일으킨 사건을 말합니다.세종의 뒤를 이은 병약한 문종은 자신의 단명을 예견하고 영의정 황보인, 좌의정 남지, 우의정 김종서 등에게 자기가 죽은 뒤 어린 왕세자가 등극했을 때 그를 잘 보필할 것을 부탁, 1452년 남지가 병으로 좌의정을 사직한 후 좌의정은 김종서, 우의정은 정분이 맡게 됩니다.수양대군은 1453년 문종의 유탁을 받은 삼공 중 지용을 겸비한 김종서의 집을 불시에 습격, 그와 그의 두 아들을 죽이고 이 사변 직후 수양대군은 김종서가 모반하였으므로 주륙하였는데 사변이 창졸간에 일어나 상계할 틈이 없었다고 사후에 상주하였고, 곧 이어 단종의 명이라고 속여 중신을 소집, 사전에 준비한 생살 계획에 따라 황보 인, 이조판서 조극관, 찬성 이양 등을 궐문에서 죽였으며 좌의정 정분과 조극관의 동생인 조수량 등을 귀양보냈다가 죽였으며, 수양대군의 친동생 안평대군이 황보인, 김종서 등과 한패가 되어 왕위를 빼앗으려 하였다고 거짓 상주해 강화도로 귀양 후 사사했습니다.수양대군은 10월10일 정변으로 반대파를 숙청 후 정권을 장악, 그는 의정부영사와 이조, 병조 판서, 내외병마도통사 등을 겸직했고 정인지를 좌의정, 한확을 우의정으로 삼으며 집현전으로 하여금 수양대군을 찬양하는 교서를 짓게 하는 등 그의 집권태세를 굳혔습니다.이 정변이 계유년에 일어나 계유정난이라 하며 이 사건에 공이 있다하여 수양대군, 정인지, 한확, 이사철, 박종우, 이계전, 박중손, 김효성, 권람, 홍달손, 최항, 한명회 등 37명은 정난공신이 됩니다.
Q. 루터교란 어떤 종교이며 우리나라에도 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루터교회는 주로 신성 로마 제국의 형해화로 사실상 왕과 같은 권력을 지닌 독일의 대영주들과 스웨덴, 덴마크 등의 북유럽의 군주들을 중심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는 북유럽의 군주들이 이탈리아 반도에 있는 교황의 간섭에서 벗어나 세속 군주의 왕력을 강화하려는 정치적 움직임의 영향이 크고 이러한 배경에서 루터교회는 국교 지위를 얻게 됩니다. 그 영향으로 현재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독일 북부와 동부 전역에 루터교회는 국교회로서 왕과 왕족들, 인구의 70~90%가 국교회 루터교회인들입니다.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체코 등지에 개혁주의 교회들과 한 교단으로 통합되어있는 경우도 있으며 이는 연합교회라 합니다.초기 개혁에 대한 교리의 기초는 마르틴 루터와 필리프 멜란히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루터는 멜란히톤에게 아우구스티노의 칭의론과 개혁의 방향을 가르치고 멜란히톤은 루터에게 코이네 그리스어를 가르쳐주었습니다.마르틴 루터는 강력한 예정설을 주장하며 아담을 통해 유전된 원죄로 자유의지가 완전히 타락해 죄의 노예가 되었다는 노예의지론으로 설명, 따라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총이 구원의 핵심이며 하나님은 믿는 자들을 고난을 통해 신앙이 성장하게 한다는 십자가 신학을 제시, 당시 상선벌악에 치중해 주님의 마음에 들수록 모든것이 좋아진다는 스콜라 철학에 맞섰습니다.또 성만찬과 세례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을 중시, 이신칭의 교리를 주장했습니다.우리나라의 경우 개신교 루터회 교단으로 한국 루터교회의 예배, 전례성은 성공회 고교회파 감사성찬례와 변경예배의 중간쯤 있으며기독교 한국 루터회에는 5천명의 신자가 있습니다.
Q. 우리나라 최초에 우체국는 언제 생기고 역사는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는 1884년 4월 22일 세워진 우정총국을 통해 우편의 역사를 시작하나 당시 기차나 자동차는 운용되지 않아 속도가 느렸습니다.그해 12월 갑신정변의 여파로 우정총국 초대 총판 홍영식이 며칠 후 살해되며 10여년 넘게 근대 우편제도가 중지, 1895년 갑오개혁이 되어서 전국 서비스가 시작되었습니다.1900년 만국우편연합에 가입해 국제 우편 서비스를 시작, 당시 우체국의 명칭은 우체사 였습니다.일제의 침략이 본격화되며 1905년 한일통신합동조약이 강제로 맺어지며 대한제국의 체신 업무는 그대로 일본에 접수되어 우정총국은 경성우편국으로 흡수, 해방 이후 일제가 남겨둔 시설로 다시 업무를 시작했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정부의 공식기관이 되어 오늘날 대한민국 우편서비스의 모태가 됩니다.우체국은 우정사업본부 소속으로 우체국을 관할하는 지방우정청은 전국9개이며 상당수 직원들은 국가공무원입니다.군사 우체국 대량 폐지에 이어 2014년 7월 우편 이용률 감소로 인한 적자를 이유로 대학교 캠퍼스 내 우체국을 상당수 폐하고 일부는 우편 취급국으로 전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