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판문점도끼만행 사건이 일어난 배경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당시 문제의 미루나무는 공동경비구역에서 25년생 15m높이의 나무로 대한민국과 북한 양측이 상대방을 감시하기 위한 시계확보에 지장을 주고 잇었습니다.유엔군 측 주한미군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의 제 5관측소에서 제 3초소와 비무장지대를 관측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으나 북한 3개 초소에 둘러싸인 제 3초소 부근에 미루나무 가지가 무성하게 자라있어 이를 제대로 관측할수 없었습니다.1976년 8월 18일 오전 10경 주한 미군 경비중대장 아서 조지 보니파스 대위를 위시해 소대장 마크 토머스 배럿 중위 등 2명과 부사관과 병 4명, 대한민국 국군 장교 1명과 부사관과 병 4명 등 11명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 남쪽 유엔군 측 제 2초소 부근에서 시야를 가린 미루나무의 전지작업을 하는 대한민국 노무자 5명의 작업을 감독, 경비하고 있었습니다.그 때 조선인민군 박철 중위와 다른 장교 1명, 15명의 부사관과 병이 나타나 작업 중지를 요구했지만 미루나무의 위치가 유엔군 측의 관할에 속했기 때문에 보수작업을 하는데 문제가 없다 판단해 보니파스 대위는 경비중대장 직권으로 작업을 계속 지시합니다.인근 초소의 인민군 부사관과 병 20명은 경비 병력을 요청받고 트럭을 이용해 도착, 박철 중위의 작업중지 재요구를 보니파스 대위가 거부하자 박철의 공격명령에 따라 인민군 부사관과 병들은 트럭에 실어 가지고 온 곡괭이, 몽둥이와 함께 노동자들이 작업에 쓰려고 가져왔던 도끼 등을 빼앗아 휘두르며 기습하게 됩니다.
Q. 빨치산이 어떤 사람을 말하는 건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빨치산은 비정규군 유격전 요원을 뜻합니다.러시아어 파르티잔에서 유래된 외래어로 한국어에서 빨치산으로 발음이 변형된 것입니다.파르티잔은 프랑스어의 파르티에서 비롯된 말이며 당원, 동지, 당파 등을 뜻하는 말이었으나 적어도 12세기경부터 partisan이라는 단어가 프랑스에 쓰이기 시작했으며 17세기 경 이 단어는 지역 군벌을 의미하는 단어였고 나폴레옹 전쟁 중 스페인 전역에서 게릴라에게 호되게 당한 프랑스군은 이들을 군벌이라 호칭하게 되었고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던 영국군은 게릴라=파르티잔이라고 생각하게 되어 스페인어에서 유래한 게릴라와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게 정착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순수한 유격대원의 의미와 더불어 정예, 특수부대의의미도 가지고 있었습니다.19세기 이전 미국에서는 파르티잔의 의미가 약간 뒤틀리는데 미국 독립전쟁 당시 민병대와 남북전쟁 당시의 남군의 영향으로 인해 19세기까지 미국에서 파르티잔의 의미는 레인저나 코만도와 같은 특수부대와 비슷한 느낌이 더 강했습니다.20세기에 접어들면서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반프랑코 게릴라들의 활약과 국제여단덕에 파르티잔과 게릴라는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고 보급되기 시작, 의미도 거의 현재와 비슷하게 고정되었습니다.현재는 유격대원, 편의대원을 가리킵니다.
Q. 고대국가중에 발해라는 나라의 기원이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668년 당은 대동강 이북과 요동 지방의 고구려 땅을 차지하기 위해 평양에 안동 도호부를 설치, 고구려 유민은 요동지방을 중심으로 당에 대한 저항을 계속했고 이에 당은 고구려 유민을 통제하기 위해 영주로 강제 이주합니다. 이곳에는 고구려 유민을 비롯해 말갈인, 거란인 등 다수 민족이 당의 감시와 통제를 받고 있었으므로 언제든지 반란을 일으킬수있는 상태였습니다.696년 5월 거란추장 이진충과 손만영이 영주도독 조홰의 폭정에 불만을 품고 봉기, 혼란한 틈을 타 고구려 장군 출신인 대사리 걸걸중상과 그의 아들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 말갈인과 함께 영주를 탈출해 만주 동부지역으로 이동, 이동 중 말갈인을 이끌던 걸사비우와 고구려 유민을 이끌던 대사리 걸걸중상이 전사하면서 대조영이 무리를 이어 받은 것으로 추정됩니다.대조영은 추격해 오는 이해고와 당나라군을 천문령 전투에서 크게 무찌른 뒤 만주 동부 지방에 남아있던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을 규합해 698년 길림성 돈화현 부근에 위치한 읍루의 동모산 기슭을 차지하고 당나라의 안동도호부를 정복해 도호부의 한족들을 노비로 강등시키면서 곧 진국을 건국, 말갈 촌장, 고구려 촌장 들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어 진국왕이 되며 고왕 대조영은 천통이라는 독자 연호를 사용합니다.당나라는 대조영의 발해 건국이 기정사실화 되고 돌궐, 거란, 해 등의 압력으로 요하 유역과 만주 일대를 발해에게 정복당하고 안동도호부도 멸망하자 발해인들을 달래기 위해 705년 책봉을 시도하지만 불발, 713년 대조영은 좌효위원외대장군 발해군왕이 되었고 홀한주 홀한주도독의 벼슬을 추가, 당나라는 발해의 번성에 굴복하게 됩니다.
Q.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어떻게 만들어진건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아메리카노의 정확한 유래는 불분명합니다.가장 유력한 설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에 점령군으로 진주한 미군들에게서 유래한 것으로, 당시 로마에서 주둔했던 미군 장병들은 쓴 맛이 지나쳤던 에스프레소를 가볍게 마시려고 본토에서 즐겨 마시던 드립커피 수준으로 물에 희석시켜 마셨는데 전쟁통에 우유는 부족했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뜨거운 물에 타 마셨고 이 커피를 이탈리아인들이 반쯤 경멸의 의미를 담아 아메리카노라고 불렀다는 설입니다.세계대전 당시 커피는 에너지 부스트 음료로 군대에서 상당히 중요시되는 보급품이었고 미군 역시 열심히 보급을 하나 이마저도 모자라는 경우가 많았고 당시 미군 한사람이 1년간 평균적으로 소비하는 커피의 양이 16kg정도, 따라서 이탈리아에 주둔했던 미군도 모자라는 커피 보급을 현지의 커피를 통해 보충했는데 에스프레소는 영 입맛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우유를 타서 먹자니 우유도 모자라 급한대로 물이라도 타서 마개조했을 것이라는 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