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홈답변 활동잉크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최은서 전문가
성신학원
역사
역사 이미지
Q.  나폴레옹의 26인의 원수 중 한명인 피에르 오주로의 생애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프랑스의 장군으로 카스틸리오네 전투와 아르콜레 전투에서 두각을 드러냈고, 프뤽티도르 쿠데타를 돕도록 나폴레옹에 의해 파리에 파견, 원래 그는 공화주의자였기 때문에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지만 1804년 원수로 임명되고 1806년 카스틸리오레 공작 작위를 받았습니다.그러나 라이프치히 전투 후 황제를 버리고 1814년 이후 리옹의 방어를 포기하고 부르봉 왕가에 가담, 나폴레옹이 복귀하자 오주로는 다시 나폴레옹에 충성을 맹세합니다.나폴레옹은 워털루전투에서 패하고 완전히 몰락, 오주로는 부르봉 왕가로부터 반역자로 지목되어 재판에 기소되는 신세가 되었고 루이 18세는 오주로의 목숨은 살려주나 그의 원수직을 박탈하고 연금을 몰수합니다.1816년 6월 12일 자신의 저택에서 사망했습니다.
역사
역사 이미지
Q.  양복과 같은 정장옷은 언제 처음 들어오게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한국에서 양복은 1894년 갑오개혁을 계기로 당시 조선 정부가 서양 문명을 받아들여 제반제도 개혁을 단행할 때 복제개혁으로 처음 입게 되었습니다.
역사
역사 이미지
Q.  광해군이 폐위되었던 인조반정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이반이 도중에 밀고하나 , 예정대로 거사는 실행에 옮겨지게 됩니다.능양군과 이서, 신경진, 이귀, 이괄, 김류, 김자점, 심기원, 구굉, 구인후, 최명길, 최내길 등은 20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창의문으로 진격해 성문을 부수고 창덕궁에서는 미리 포섭되어있던 훈련대장 이흥립의 내응으로 훈련도감의 군사가 궁궐 문을 열어주어 반정에 성공하게 됩니다.
역사
역사 이미지
Q.  안시성 전투에 대해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안시성의 위기를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 당은 고연수 등을 앞세워 항복을 권유하는 한편 당시 가장 위력적인 성공격무기였던 포거와 충거를 동원해 안시성을 공격하나 안시성측은 이를 번번이 물리쳤고, 무너진 성벽도 빨리 수리하는 등 확고한 자세로 방어에 임합니다.안시성의 이 같은 완강한 저항에 당황한 당은 태종의 본영을 여러번 바꾸어가면서 , 안시성을 함락하는 날 남자들은 모두 죽이겠다고 공언하며 안시성 공격에 더욱 박차를 가하나 뜻대로 되지 않았고 고연수의 건의에 따라 안시성을 그냥 두고 동쪽으로 이동해 방비가 약한 오골성을 점령한 다음 곧장 평양으로 진공하자는 논의까지 하게 되나 천자가 친히 싸움터에 나왔으니 안시성을 뒤에 두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험은 할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당의 안시성 공격은 계속 강행됩니다.장량이 이끄는 수군의 건안성 공격마저 교착상태에 빠지자 초초해진 당은 이 싸움을 빨리 마무리 하기 위해 이세적으로 하여금 하루에도 6,7회씩 성의 서쪽을 공격하게 됩니다.당은 60일에 걸쳐 성의 동남쪽에 연인원 50만명을 동원해 성벽보다 높게 토산을 쌓아 이를 발판으로 성을 공격, 그러나 갑자기 토산이 무너지면서 성벽의 한쪽 뒤퉁이가 부서지는 사태가 발생, 고구려군은 이 틈을 이용해 무너진 성벽 사이로 빠져나와 토산을 점령합니다.당은 토성을 탈환하기 위해 3일간 극렬한 공격을 폈으나 실패했으며 그 결과 당의 작전은 전반적으로 큰 타격을 받게 되었고 겨울이 되어 날씨가 추워지고 군량마저 떨어졌으므로 당은 할수없이 88일간의 포위를 풀고 그 해 9월 18일 서둘러 퇴각합니다.
역사
역사 이미지
Q.  프랑스의 군인이었던 프랑수아 조제프 르페브르의 생애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알자스 지방의 방앗간집 아들로 태어나 잠시 사무원으로 일하다 1773년 프랑스 근위대에 들어갔고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1792년 9월~1793년 1월까지 대위에서 사단장으로 진급해 1793년 ~1796년 라인 주둔군 전위부대를 지휘해 1794년 6월 플뢰루스 전투에서 오스트리아를 격퇴시키고 1795년 9월 뒤스부르크 전투에서도 동을 세웠습니다. 1798년 잠시 상브르와 뫼즈 군단을 지휘, 1799년 파리 주둔 사령관이 되었으며 나폴레옹의 설득으로 그의 지지자가 되어 1799년 11월 9일 브뤼메르 18일 쿠데타를 지지하게 됩니다.1800년 상원의원, 1804년 원수가 되어 1806년 10월 14일 예나 주둔 제국 보병수비대 지휘 역할을 맡고 1807년 7월 27일 폴란드 단치히를 점령, 이 공로로 1808년 단치히 공작 작위를 받았습니다.1808년 스페인에서 근무하다 1809년 바이에른 군단 사령관으로 에크뮐 전투와 바그람 전투에서 싸웠고 1812년 러시아원정에 참가, 이후 1814년 나폴레옹을 퇴위시키는 의견을 지지해 루이 19세에 의해 귀족에 봉해졌으나 백일천하 때 다시 나폴레옹 편에 서서 작위를 다시 박탈당했습니다.
역사
역사 이미지
Q.  연려실기술은 어떤 책인지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왕조실록이 번역되기 이전 가장 유명했던 역사서로 국가에서 주관한 정사가 아니라 개인이 저술한 역사서이지만 자료 수집에 매우 공을 들이고 최대한 주관적인 관점을 배제함으로써 공정성과 객관성에도 신경쓴 사서이므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역사
역사 이미지
Q.  나폴레옹의 26인의 원수 중 한명인 프랑수아 크리스토프 켈레르만의 생애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프랑수아 크리스토프 켈레르만은 1735년 5월 28일 스트라스부르에서 후일 시의원이 되는 장 크리스토프 켈레르만과 마리 마들렌 뒤르의 7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고 켈레르만 가문은 본래 작센 출신의 상인 가문으로 17세기 말 엽 스트라스부르에 정착했고 켈레르만의 조부 대에 귀족이 되었습니다.켈레르만은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어릴때부터 좋은 교육을 받았지만 행정관이나 법률가보다 군인이 되길 바랐습니다.켈레르만은 로벤달 연대에 사관후보생으로 자원입대해 군 생활을 시작, 1752년 소위로 임관한 그는 7년 전쟁 때 프로이센군에 맞서 용맹하게 싸웠고 종전 후 외교 업무를 맡아 폴란드를 방문, 이때의 경험으로 켈레르만은 1771년 바르 동맹군을 지원하기 위해 파견된 프랑스 장교단의 일원으로 선발될수 있었고 크라쿠프를 탈환하고 티니에츠에서 아군의 퇴로를 엄호하는데 기여해 생루이 훈장 슈발리에를 수훈받았으며 1788년 준장으로 진급함으로써 나폴레옹이 임명한 26인의 원ㅅ들 중 프랑스 혁명 이전에 장성으로 진급한 유일한 인물이 됩니다.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켈레르만은 혁명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고 1791년 2월 오랭 주 주둔군사령관 , 4월 바랭 주 주둔군사령관으로 임명된 켈레르만은 혼란스러운 알자스 지방을 통제하고 란다우 요새를 훌륭하게 재정비한 공적으로 1792년 3월 소장으로 진급, 8월 26일 그는 니콜라 뤼크네 원수의 뒤를 이어 중부군 사령관으로 임명, 9월19일 북부군 사령관 샤를 프랑수아 뒤무리에와 함께 발미 전투에서 승리, 발미 전투에서의 승리는 그를 혁명전쟁의 영웅으로 만들어 그의 군 경력에서 가장 인상적인 전공이 됩니다.그러나 11월 14일 켈레르만은 명령불복종 및 적극적으로 공세에 나서지 않는다는 죄목으로 군사법정에 기소, 무죄판결을 받았으나 알프스군 사령관직으로 밀려났고 1793년 9월 벌어진 일련의 전투에서 사르데냐 왕국군을 무찌르고 사보이를 탈환하지만 11월 자코뱅파에 의해 불충성 혐의로 다시 기소되어 13개월동안 수감생활을 합니다.1794년 7월 자코뱅 정권의 몰락으로 석방된 켈레르만은 알프스군 사령관으로 복직, 1797년 9월 13일 알프스군이 해체된 이후 그는 국민위병과 서부군의 기병총감, 바타비아군 임시사령관 등의 직책을 역임, 브뤼메르 18일 쿠데타 이후 나폴레옹에 의해 상원의원이 됩니다.나폴레옹은 켈레르만의 군사적 재능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고 그는 켈레르만을 용맹하고 활동적이지만 사령관이 될 자질은 없다고 보았으며 켈레르만 또한 나폴레옹은 내전을 통해 권력을 잡은 야심가일뿐이라 생각, 그러나 나폴레옹은 새로운 체제의 수립을 위해 군부 내의 다양한 세력과 혁명전쟁의 공신들을 포섭해야 할 필요가 있었으며 켈레르만도 가문의 번영과 아들의 출세를 위해 나폴레옹에게 협조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1804년 5월 19일 나폴레옹은 켈레르만을 제국 원수로 임명, 요하니스베르크의 장원과 콜마르 의원령 등 많은 토지를 하사, 1808년 발미 공작으로 봉해졌습니다.나폴레옹 전성기, 고령의 켈레르만은 예비군 사령관과 같은 후방 업무를 주로 담당, 1805년~1809년 사이 예비군 제 3군단, 에스파냐 방면군 예비군, 라인군 예비군, 북부군 예비군 사령관을 연이어 맡았고 이후 건강문제로 잠시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1812년 25.26 군관구 사령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1813년 독일-프랑스 전쟁이 시작되자 켈레르만은 라인군 예비군 사령관이 되어 동부 국경지대로 이동, 그는 라이프치히 전투 직후 마인츠와 프랑크푸르트에서 부상병들을 옮기는 일을 담당, 메스에 모여든 패잔병들을 통솔해 샬롱앙샹파뉴에 방어선 구축, 그러나 1814년 1월 나폴레옹은 다른 원수들에게 현장 지휘를 맡기고 켈레르만은 파리로 돌려보냅니다.1814년 4월 1일 켈레르만은 상원에서 나폴레옹의 퇴위에 찬성, 루이 18세는 그를 귀족원 의원으로 임명, 백일천하 때 알들인 프랑수아 에티엔 켈레르만이 나폴레옹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워털루 전투에 참전한 것과 달리 늙은 원수는 조용히 자택에서 칩거했습니다.나폴레옹이 완전히 몰락한 후 체포된 미셸 네 원수의 사형 판결에 동의, 몇몇 왕당파들로부터 지속적인 위협을 받긴 했지만 켈레르만은 왕정복고 시대에 자신의 원수 칭호와 연금, 발미 공작위를 모두 유지할수있었습니다.1820년 9월 13일 켈레르만은 파리의 자택에서 노환으로 사망, 그는 자신의 심장을 발미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그는 파리의 페르 라셰즈 묘지에 묻혔고 그의 심장은 유언에 따라 발미 전투 기념비에 안장되었습니다.
역사
역사 이미지
Q.  왜 우리나라에는 남아선호사상이 생겼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중국은 3000년 전부터 집안의 상속이나 제사와 같은 중요한 집안일을 모두 아들, 특히 장남에게 맡기는 경향이 있어 집에 아들이 없으면 양자를 데려와서라도 가계를 이어가게 했는데 이 중국의 문화가 한국으로 넘어와 남아를 선호하는 사상이 박히게 된 것입니다.이는 조선 건국자들의 사상 때문으로 조선이 건국자들은 중국의 문화를 좋다고 여겨 각종 중국의 문화를 조선에 대입시키면서 중국의 남자에게 돌아가는 종법까지 대입시킨 것입니다.
역사
역사 이미지
Q.  촉나라의 이막은 왜 처형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아버지 유비는 외정으로 항상 밖으로 나돌았고 제갈량은 후방에 머물며 성장기의 유선과 가장 많이 조우했을 가능성이 높고, 국정에 바쁜 와중에도 유선에게 손수 책을 필사하며 공부를 가르쳐주기도했고 유비가 사망한 이후에도 끝까지 촉한에 충성하며 유선을 보좌했는데 유선에게 제갈량은 의아버지를 넘어 친아버지나 다름없고 존경스러운 스승이기도 하며 훌륭한 충신이기도 한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제갈량이 사망한 후 그를 숭배하는 백성들이 사당을 세우겠다고 하자 유선이 이를 불허한 것을 볼때, 제갈량에 대한 인간적인 신뢰 및 총애와는 별도로 유선도 군주의 위엄을 위협할 수 있는 제갈량의 정치적, 사회적 위상을 어느정도 견제할 생각은 있었으나 이막은 이런 정상적인 신권 견제에 동조하는 수준이 아닌 제갈량을 인격적으로 모독해 버리면서 유선의 의도를 넘어서게 됩니다.이막의 행동은 달리 해석하면 유선의 제갈량에 대한 믿음이 아무런 쓸모가 없고 오히려 나라에 해가 되었다 주장하는 꼴이니 유선 본인에 대한 모욕으로도 해석이 가능, 유선으로서 도저히 이막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역사
역사 이미지
Q.  남의 의견이나 충고를 조금도 귀담아 듣지않는사람을 뭐라고부를까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마이동풍- 봄바람이 말의 귀를 지나간다는 말로,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는 의미 입니다.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무관심하거나 무시하며 대수롭게 생각하고 그냥 흘려보낸다는 의미 입니다.
716717718719720
아하앤컴퍼니㈜
사업자 등록번호 : 144-81-25784사업자 정보확인대표자명 : 서한울
통신판매업신고 : 2019-서울강남-02231호개인정보보호책임 : 이희승
이메일 무단 수집 거부서비스 이용약관유료 서비스 이용약관채널톡 문의개인정보처리방침
© 2025 Ah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