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현재의 병역 의무, 조선시대에는 군역은 어떻게 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에는 16~60세의 남성은 대부분 병역의 의무를 지어야 했으며 이를 가리켜 양인개병제라 합니다.양인은 양반, 상인, 농민을 가리키는 말로 예비관료인 유생들 관가와 양반가에 소속된 관,사노비를 제외하고 모두 군대에 가야했습니다.평소 자신의 생업에 종사하다 순번이 되면 매년 2~6개월씩 군대에 복무해야했습니다.
Q. 시인 이상의 생애와 그의 작품세계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본명은 김해경, 본관은 강릉, 서울출신으로 아버지는 김연창, 어머니는 박세창으로 2남 1녀 중 장남입니다.3세때부터 부모 슬하를 떠나 통인동 본가 큰아버지 김연필의 집에서 성장했습니다.1921년 누상동에 있는 신명학교를 거쳐 1926년 동광학교, 1929년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 그 해 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사로 근무하며 조선건축회지 -조선과 건축- 의 표지도안 현상모집에 당선되었습니다.1933년 각혈로 기사의 직을 버리고 황해도 배천 온천에 요양 갔다가 돌아온 후 종로에서 다방 제비 를 차려 경영, 이 무렵 이곳에 이태준, 박태원, 김기림 , 윤태영, 조용만 등이 출입하여 이상의 문단 교우가 시작됩니다.1934년 구인회에 가입해 특히 박태원과 친하게 지내며 그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1일 - 에 삽화를 그렸고 그 뒤 1935년 다방을 폐업하고 카페 쓰루, 다방 무기 등을 개업하나 경영에 실패, 1936년 구본웅의 아버지가 경영하던 창문사에 취칙하나 얼마 안가 퇴사했습니다.그해 6월 전후하여 변동림과 혼인후 일본 동경으로 건너갔으나 1937년 사상불온혐의로 구속되며 이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어 그 해 4월 동경대학 부속병원에서 사망했습니다.그의 작품활동은 1930년 -조선-에 첫 장편소설 -12월 12일-을 연재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1931년 일문시 -이상한 가역반응- , -파편의 경치 - 등을 -조선과 건축- 에 발표, 1933년 -가톨릭 청년-에 시 -1933년 6월 1일- , -꽃나무- 등을 , 1934년 -월간매신-에 -보통기념-, -지팽이 역사-를 , -조선중앙일보-에 국문시 -오감도-등 다수의 시작품을 발표했습니다.이상은 1930년대를 전후해 세계를 풍미하던 자의식 문학시대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자의식 문학의 선구자인 동시 초현실주의적 시인이며, 그의 문학에 스며있는 감각의 찬란, 객관적 우연의 모색 등 비상식적인 세계는 그의 시를 난해한 것으로 성격짓는 요인으로 그의 개인적인 기질이나 환경, 자전적인 체험과 무관한 것은 아닙니다.근본적으로 현실에 대한 그의 비극적이고 지적인 반응에 기인, 그러한 지적 반응은 당대의 시적 상황에 비추어 보았을때 한국 시의 주지적 변화를 대변함과 동시에 현대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그의 시는 전반적으로 억압된 의식과 욕구 좌절의 현실에서 새로운 대상 세계로 탈출하려 시도하는 초현실주의적 색채를 강하게 풍기며 오감도의 경우 육제적 정력의 과잉, 말하자면 발산되어야 하면서도 발산되지 못한 채 억압된 리비도의 발작으로 인한 자의식 과잉을 보여줍니다 대상을 정면으로 다루지 못하고 역설적으로 파악하는 시적 현실이 잘 드러납니다.이와 같은 역설에서 비롯되는 언어적 유희는 그의 인식 태도를 반영하고 있는 동시에 독특한 방법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