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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사유의 확장 예술 향유를 통해 인생폭을 넓혀봐요

안녕하세요 사유의 확장 예술 향유를 통해 인생폭을 넓혀봐요

신현영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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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집트 역사에서 중국의 제갈량이나 사마의와 같은 지략가가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중국의 제갈량과 사마의와 비견될만한 지략가가 이집트에 존재하다면 누구였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을 찾기는 어려운것 같습니다. 이집트의 경우 매우 강력한 왕권체제로 역사가 파라오를 기반으로 기록되고 쓰여진 경향이 있어 그 뒤에 있는 책략가에 대한 기록을 알기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365일을 12개월로 나누어 달력을 만들어 나일강의 범람을 예측하였다던지 시계를 발명하고 피라미드 건축물을 지은것을 본다면 고대 이집트인들도 매우 똑똑했고 지략가들이 분명 존재했으리라 유추할 수 있습니다.추측해보건데 파라오 다음으로 강한 관료였던 총독집행관과 대제사장들중에 뛰어난 지략가가 있었다고 볼수 있으며 그중 당시 매우 유능했던 임호텝이 이집트의 총리로서 지략가였으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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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중국 강건성세에 대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강건성세의 글자의 의미를 찾아보면 는 '강'과 '건'이라는 두 글자가 핵심인데요. '강'은 강력하다는 의미이고, '건'은 굳건하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 용어는 청나라의 통치력과 국가의 강건함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사용되며, 강희제와 그의 후계자들이 청나라를 번영시킨 업적을 강조합니다.[강건성세]는 때론 [강옹건성세]라고도 불렸으며 청나라 시대의 최전성기를 의미합니다. 이 시기는 제4대 황제 강희제가 1681년부터 시작하여 3번의 난을 진압하고, 제5대 황제 옹정제를 거쳐 제6대 황제 건륭제 치세의 중반까지 이어졌습니다. 이 시기에는 청나라의 가장 번영한 시기로, 청나라의 경제, 군사, 문화 예술 등 모든 방면에서 부흥과 절정을 맞이했기에 이렇게 불리우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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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중국인들은 왜 강희제를 최고의 군주로 생각하나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강희제는 청나라 후기의 장군으로, 만주족 출신입니다.강희제는 부친인 순치제가 천연두로 죽게되자, 어린 나이인 여덟 살 때 황제로 즉위하여 61년간(1722년까지) 역사상 가장 긴 재위기간을 가졌던 청나라 황제입니다. 그는 60년 동안 청 제국의 성장과 안정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지적 능력, 정치적 직감, 체력 등이 대체로 그 성취를 이룬 요인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황후 4명을 비롯해 총 64명의 후궁과 많은 자녀들을 두어 중국 역대 황제 중에서도 후궁과 자녀의 수에서 가장 많기도 하였습니다. 후에 역사학자들이 강희제를 훌륭한 명군으로 평가하는 이유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이렇습니다.대만 수복과 몽골 정복: 강희제는 대만과 몽골을 정복하여 청 제국의 영토를 확장시켰습니다. 이러한 민족 융합 업적은 중국에서 '하나의 중국' 정책을 지지하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섬기는 리더십: 강희제는 백성을 중요하게 여기며, 중국의 현지 지도자들은 그의 리더십에서 영감을 받아 중국을 발전시키기 위해 모범적인 모델로 여기고 있습니다.문화·예술 홍보: 중국에서는 강희제를 주제로 한 소설과 드라마 등의 작품들이 생산되어 자국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강희제의 모습과 이름을 더욱 널리 알리고 있으며,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과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는 특히 젊은 세대에게 인상을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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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우리나라의 석가탄신일은 처음부터 휴일로 지정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는 올해부터 석가탄신일을 휴일이 되어 대체휴일까지 지정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외에도 석가탄신일을 휴일로 지정하고 있는 나라들이 있는데요. 세계 각국에 불교에 기반을 둔 나라들이석가탄신일을 휴일로 지정하고 있습니다.네팔의 경우 1956년에 5월5일을 석가탄신일로 통일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대부분 동남아들이 이 날짜를 석가탄신일로 따르고 있습니다.또한 한국 중국 일본 대만 홍콩은 태국 티베트 싱가포르 인도 등등 많은 날에 석가탄신일이며 축제겸 기념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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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예문관은 무슨 기능을 하는 기관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예문관이라는 행정 및 연구 기관이 있었습니다. 예문관은 조선시대 국왕의 말이나 명령(칙령과 교명)을 담은 문서를 기록하는 역할을 맡아온 관서인데요. 1401년에 태종1년에 설립된 이 기관은 집현전에서 수행되던 인재 양성과 학술적인 업무 일부를 계승하였습니다. 이 제도는 젊고 능력있던 문신들이 예문관의 역할을 겸하게 하여 학문에 힘쓰도록 하기 위함으로 보입니. 1470년에는 예문관 내에 부수찬(종6품)에 이르는 관직이 더 추가되어 집현전과 예문관의 기능을 통합한 복합적인 기관이 되었습니다.이후 1478년에는 구 집현전 직제가 홍문관으로 이관되고, 예문관은 종래의 예문관으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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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일제 강점기에 일본을 왜 우리나라 산에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이 한국의 정기가 흐르는 주요 산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도시전설같은 이야기가 많이 전해졌었습니다. 민간으로부터 전해지던 이야기였는데요 내용을 살펴보면 당시 일본이 세계대전에서 패하게 되고 일본 전범재판에서 일본 장군 야마시타가 한국에 쇠말뚝을 수백개 박았다는걸 털어놓았다는 것을 고백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김영삼 정부때 역사바로세우기의 일환으로 쇠말뚝 뽑기를 실행하여 100개 가량의 말뚝을 뽑았다고 합니다.하지만 이후 우리나라 언론들이 그에대한 기록과 증거를 찾아본 결과 이야기에서 전해지던 재판기록이나 통역관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종의 도시괴담같은 거짓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일제시대 박았다는 쇠말뚝은 알고보니 일제강점기 시저러 한국땅의 토지조사 사업을 위해 박았거나 인근 군부대에서 필요에 의해 박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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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비오는 날에 빈대떡과 막걸리를 먹고싶은 이유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비오는 날이 되면 빈대떡을 먹어야한다는 이야기들이 있지요. 그러면 자연스레 막걸리도 따라오게 되는데요. 비오는날에 빈대떡 막걸리를 떠올리는 유래는 기록으로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지만 전해져오는 소문들은 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비가 올때 내리는 타다탁타다닥 하는 소리가 기름에 무언가를 지질때 나는 소리가 연상된다고 해서 자연스례 파전이나 빈대떡을 떠올리게 됐다고 합니다. 또는 비오는날 조금 으슬하고 서늘한 기운이 서리기 때문에 빈대떡에 막걸리를 한잔 하면서 몸을 따뜻하게 데우려고 한 것에서 유래됐다는 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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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보물섬은 실제로 지구상 어딘가에 존재하나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해적에 대한 전설과 해적들이 숨겨둔 보물에 대한 이야기라던지 "X"가 그 자리를 표시하는 지도같은 이야기들이 아직도 전해지고 대중들에게 흥미진진한 미스터리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해적들이 전리품을 묻었다는 아야기는 매우 드물고 신빙성이 많지 않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옛날 영국의 사략선인 프랜시스 드레이크(Francis Drake)라는 해적 이야기의 경우, 1573년 스페인 노새 열차를 습격한 후, 드레이크와 그의 부하들은 파나마 해안을 따라 몇 톤의 금과 은을 매장하여 숨겨두었다고 합니다. 그 후 드레이크는 몰래 그 장소에 가서 전리품을 회수했다고 전해집니다. 운이 좋지 않은 또 다른 해적은 인도양에서 선박을 약탈한 혐의로 수배되었던 악명 높은 사략선의 선장 윌리엄 키드입니다. 1699년, 키드는 뉴욕 근처에 닻을 내리고 작은 가디너스 섬에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현대의 금과 보석을 묻었다고 합니다. 키드는 보스턴에서 자신의 누명을 벗기려다 체포되었고, 결국 정부는 부당하게 얻은 키드의 보물의 대부분을 추적하고 압수했습니다. 이런 사실들을 토대로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의 1883년 소설 "보물섬(Treasure Island)"을 집필하고 인기를 얻어 보물섬이라는 명칭이 유행되었습니다. 그러나실제 과거 해적들이 풍족한 생활을 즐긴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해적들 대부분은 여자나 술 도박에 전리품을 낭비하는 성향이 더 컸고 땅에 매장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현재에 들어서는 실제 보물섬이 있다는 소문으로 수만명의 탐험가들이 여러 장비로 찾아 나섰지만 대부분 사기였거나 실패했다고 합니다.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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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미술이라는 작품에 대해서 가치를 평가하기 시작한것은 언제부터인가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미술 작품이 물질적인 가치로 평가되면서 재화로 거래되기 시작한 시기는 언제쯤일까요? 아주 정확한 시기까지 알수없지만 고대로마제국의 경우 전쟁을 통해 빼앗은 전리품들 중 미술작품들을 경매를 통해 재화로 바꿨다고 합니다. 그런것을 볼때 아마도 로마제국 시기부터 미술의 가치가 알려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최초의 미술품 경매는 네덜란드에서 16세기 후반쯤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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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미술작품을 구매하기 위해 기초소양을 쌓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미술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데 미술적 소양에 기본이 필요성을 느끼시는것 같습니다.미술적 소양을 기르는데는 세가지 방법이 있는데요.첫번째 방법은 정공법입니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라는 매우 유명하고 미술사에 교과서와 같은 책이 있는데요. 이 책을 기반으로 정독하시면서 미술사를 알아가고 거기서 마음에 드는 미술사조나 작품을 찾아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 방법은 공부하는데 익숙하시고 학문적 탐구심이 있으면 좋을것 같아요- 두번째 방법은 좋아하는 것 위주로 하는 공부인데요. 예를들어 누구나 알고 좋아하는 화가인 고흐라는 작가를 먼저 공부하는거지요. 고흐라는 작가와 작품을 보고 그 뜻을 찾아보다가 관련된 인상파 화가들을 함께 알아간다던지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시작으로 가지를 뻗어가듯이 하나하나 알아가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전체적인 맥락을 알아가기에는 어렵지만 좋아하는 것 위주로 하다보니 좀더 재밌게 소양을 쌓기 좋은 방법 같아요.마지막 방법은 제가 좋아하는 방법인데 요즘 잘되어있는 유투브같은 매체를 이용해서 미술에 관련된 유투버들 영상과 영상을 보면서 재밌게 배우는 거지요. 이부분은 두번째 방법처럼 재미도 있지만 아는것이 하나도 없을때 알려주는 사람들의 영상을 참고해가면서 액기스와 재미 위주로 미술을 알아가는 좋은 방법인것 같습니다. 원하시는 방법으로 고르셔서 좋은 작품 고르시고 인테리어도 이쁘게 장식하시길 바랍니다.개인적으로는 고갱이나 앙리루소의 작품들이 인테리어용으로 좋다고 생각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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