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인도같이 노예제도가 있는 나라 있나요?
안녕하세요. 인도 이외에도 나이지리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이라크, 예멘, 도미니카 공화국, 수단, 파키스탄, 콩고 민주 공화국, 러시아, 중국, 우즈베키스탄, 북한 등에 아직도 노예제도가 존재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주로 경제적으로 낙후되고 적절한 수준의 민주주의 제도와 인권 개념이 정립되지 못한 나라들입니다. 특히 북한은 인구의 4.373%가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어린 미성년자들이 하루 10시간 이상의 중노동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Q. 과거 세자 책봉은 어떤방식으로 하였나요?
안녕하세요. 조선시대 왕위 계승의 원칙에는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로 중전의 몸에서 태어난 첫째 아들이 왕위를 계승해야 하는 것이고, 둘째로 왕이 될 사람은 덕이 있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이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는 왕손은 '대를 이을 아들'이라는 의미의 세자(世子)로 책봉되어, 후계자로서의 준비에 만전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세자를 책봉하는 임명서를 수여하는 의식을 '세자책봉례'라고 합니다. 세자책봉례는 대궐의 정전에서 거행되었습니다. 이렇게 세자의 자리에 오르면, 궁궐의 동쪽에 위치한 거처인 동궁(東宮)에서 머물렀으며, 세자익위사의 호위를 받으며 조선의 실력자들로 구성된 세자시강원의 관료들로부터 왕으로서 요구되는 식견과 능력을 기르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Q. 야인시대 김두한은 싸울때 야비하게 싸웠나요??
안녕하세요. 김두한은 실제로 몸놀림이나 스피드가 대단히 빨랐으며, 특히 발차기에 아주 능했던 싸움꾼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김두한이 발차기를 잘했던 이유는 그가 당시 2년간 당수도장에 다니면서 무술을 수련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김두한은 십대 시절에 종로 3가에 있는 당수도장에 입관하여 무술을 연마하였으며, 당수도장의 옥상에다 샌드백을 달아놓고 매일같이 발차기연습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2년 동안 발차기연습과 무술연습을 반복했던 김두한은 나이 17세 때에는 싸움기술이 크게 향상되었고, 발차기기술의 고단자가 되어 있었습니다.이러한 실력을 바탕으로 김두한은 당시의 실력자였던 구마적과의 대결에서 단 두 번의 발차기공격으로 구마적을 실신시키며 승리하게 됩니다.
Q. 6.25때 켈로부대 질문있습니다!!
안녕하세요. 한국전쟁 당시 활동했던 KLO(Korea Liaison Office)는 미국 극동사령부 소속으로 첩보 및게릴라 작전을 담당했던 부대였습니다. 미군이 관할, 운용했지만 한국인으로 구성되었고, 한국전쟁 발발 이전부터 휴전때까지 계속 활동하였습니다. "한국연락사무소", "한국연락반", "켈로부대", "제8240부대" 등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에 '시라소니'로 불리던 이성순씨가 KLO 부대 출신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한국 전쟁 동안 수많은 비밀작전을 수행하며 무수히 많은 희생을 치렀지만 부대 특성상 지금까지도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있는 부대입니다. 부대원의 상당수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게 받은 독일군 군복을 입었다고 합니다.1953년 7월에 휴전이 되자 육군 직할대로 예속되었다가 이후 해체되었으며, 이때까지 제8240부대에 남아 있던 소속 부대원들은 정식 군번과 계급을 부여받고 육군의 여러 부대들로 분산 배치되었습니다. 이후, 대한민국 국군에 계속 남은 KLO 출신자들을 창설요원으로 해서 1958년에 제1공수특전단이 창설되었고, 이 제1공수특전단은 이후 육군특수전사령부의 근간 부대가 됩니다.정부는 켈로부대원들을 국가 유공 대상자로 인정했으나 계급, 군번 없이 활동한 부대 특성상 유공자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Q. 제주도는 6.25때 아무런 타격이 없었나요?
안녕하세요. 한국전쟁 당시 제주도에서는 1947년에 시작된 4.3 사건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일제가 물러난 후에 남조선로동당의 인민유격대가 반란을 일으켜서 국군 및 경찰과 충돌하였으며, 그 이후에 서북청년단으로 대표되는 극우 무장 단체의 백색테러가 이어졌습니다. 이 기간동안 제주도의 주민들은 많은 피해를 보았습니다. 낮에는 국군과 경찰이 마을을 장악하고, 밤에는 인민 유격대와 좌익 세력들이 점령하는 과정이 반복되었습니다. 밤에는 인민 유격대나 좌익들이 나타나서 마을 주민들이 괴뢰군과 괴뢰 경찰에 협조했다면서 인민 재판을 열어서 죽이고, 낮에는 국군과 경찰이 나타나 의심스러운 징후가 보인다면서 민간인을 처형하였습니다. 또한 1945년 이후부터 7.27 정전협정 이전까지 제주도는 사상 최악의 지속적인 기근에 시달렸습니다.
Q. 임진왜란 의병이나 승병들 질문이요!!
안녕하세요. 안타깝게도 임진왜란에 활약했던 많은 의병장들은 전쟁 이후에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임진왜란 이후에 공신들에게 주어진 논공행상의 기록을 살펴보면 당시에 활동했던 대표적인 의병장들인 고경명 부자, 곽재우, 김덕령, 조헌과 7백 의병, 영규 대사와 승병들의 이름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김덕령, 곽재우와 같은 의병장들은 반란을 일으키려 했다는 누명을 쓰고 당국에 체포되어 많은 고초를 치르게 되며, 김덕령은 모진 고문 끝에 사망하고 곽재우는 고향으로 돌아가 초야에 은거해 버리게 됩니다.
Q. 해동성국이라 불리었던 발해의유적 들과 유물은 연해주와 만주에서 끝없이 발견되고 있다는데요 중국역사 학계는 왜 쉬쉬로 일관하는지요?
안녕하세요. 중국정부는 2002년부터 동북공정이라는 프로젝트하에 만주지방에 존재했던 고구려와 발해는 중국의 동북 변경 지역에 있던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역사왜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동북공정의 조직과 지도를 강화하기 위하여 중국정부는 중국사회과학원, 동북 3성 당위원회 선전부 등을 중심으로 하는 지도 협력기구를 세우고, 18명으로 구성된 전문가위원회를 세워 학술적인 감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즉 발해와 고구려에 관한 중국 역사학계의 연구들은 동북공정에 기반한 중국정부의 철저한 통제하에 있으며, 이러한 이유 때문에 중국 역사학계에서도 발해의 역사에 대한 적극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있지 못하는 실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