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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혹한 쇠똥구리
고혹한 쇠똥구리23.09.13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 때 무엇을 위하여 만들어졌나요?

청동기 시대 때 만들어진 대표적인 유물로 고인돌이 있잖아요 이런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 때 무엇을 위하여 만들어졌나요 어떤 용도로 만들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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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8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인돌을 지석묘라고도 부릅니다. 북유럽·서유럽·지중해 연안·북아프리카·서남아시아 일대의 신석기시대 묘제로 분포하나, 한국의 고인돌과 직접적인 문화적 관계는 없는 듯하다. 중국 랴오닝성과 산둥반도 및 일본 규슈에도 분포하나, 한국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미미합니다.


    고인돌은 크게 나눠 지상에 4면을 판석으로 막아 묘실을 설치한 뒤 그 위에 상석을 올린 형식과, 지하에 묘실을 만들어 그 위에 상석을 놓고 돌을 괴는 형식으로 구분된되듯 사람의 묘입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9.13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청동기는 대부분 ‘지석묘’라 불리는 고인돌에서 출토되고 있습니다. 고인돌은 말 그대로 ‘돌을 고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형식입니다. 무덤 속에는 주검만을 묻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토기나 석기, 청동기 등의 다양한 유물을 넣기도 하므로, 무덤은 그 시대의 사회상을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유적이 됩니다. 더군다나 고인돌은 박물관의 전시실이 아닌 자연 현장에서 뚜렷하게 대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청동기 시대 유적입니다.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은 무덤의 크기로 권력의 정도를 나타냈던 하나의 문화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인돌(古墳石)은 주로 고려 시대의 무덤이나 묘지에 발견되는 돌 조각물로, 청동기 시대가 아니라 고려 시대와 관련이 있습니다. 고인돌은 다음과 같은 용도와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1. 무덤 및 묘지 마커: 고인돌은 고려 시대 무덤과 묘지에서 사용되었습니다. 무덤의 위치와 범위를 표시하거나 무덤의 중심에 놓여, 무덤의 위치를 지시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무덤을 둘러싼 돌들과 함께 묘지의 경계를 설정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2. 무덤의 중심 및 상징: 고인돌은 무덤의 중심을 표시하는 역할도 하였습니다. 고려 시대에는 무덤이 신성한 장소로 여겨져, 그 중심에 고인돌을 두어 무덤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고인돌 자체가 무덤과 관련된 신성한 상징물로 여겨졌습니다.

    3. 고려 시대의 무덤 예식과 관례: 고인돌은 무덤을 지냈던 고려 시대의 무덤 예식과 관례와 연관이 있었습니다. 무덤 예식 중에는 고인돌 주변에서 음식 제물을 바친다거나 기도를 올리는 등의 의식이 있었습니다.

    4. 고려 시대의 무덤 조성 기술: 고려 시대에는 고인돌을 무덤 조성에 사용하는 기술이 발전하였습니다. 고인돌을 무덤에 적절하게 배치하고 안정적으로 고정시키는 데에도 기술적 노하우가 필요했습니다.

    이처럼 고인돌은 고려 시대의 무덤과 관련된 중요한 요소로서, 무덤의 위치 지정과 중심 표시, 무덤 예식 및 관례, 그리고 무덤 조성 기술과 관련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들은 그 시대의 무덤 문화와 종교적 신념을 반영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역사적인 흔적을 남겨주는 소중한 유물입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인돌이란 지상이나 지하에 시신을 묻는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큰 돌을 얹은 선사시대 무덤이 대부분입니다. 납작한 판석이나 괴석형 덩이돌 밑에 돌을 고여 지상에 드러나 있는 이 돌은 거대한 권력의 상징 이자 또한 이웃 부족과의 전쟁을 예방 하는 기능도 같이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에 만들어진 무덤입니다. 고인돌은 덮개돌을 받침돌로 괴어 놓은 형태로, 땅 위와 밑에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한 덮개돌을 덮습니다. 고인돌은 한반도, 중국 동북부, 일본, 동남아시아 등지에 분포되어 있으며, 한반도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습니다.


    고인돌의 용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무덤입니다. 고인돌은 주로 청동기 시대 지배층의 무덤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고인돌에서 발견된 부장품은 주로 돌화살촉, 간검돌, 민무늬토기, 청동 제품 등입니다. 둘째는 종교적 건축물입니다. 고인돌은 영혼을 위한 집이나 하늘로 통하는 통로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사회 구조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입니다.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에 계급 분화가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며, 지배층의 권력과 부를 상징합니다. 또한,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종교적 신념과 세계관을 보여주며, 영혼을 위한 장소로 여겨졌음을 보여줍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 추천 부탁드려요 ~좋은 하루 되세요 ^^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인돌은 무덤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대개 땅을 파 돌얼무덤 형식으로 방을 만들어 사람을 매장하고 굄돌과 고인돌을 쌓았는데, 전부 모덤방이있는 것은 아니며 묘표석, 제단 등 종교적인 용도로 만든 고인돌도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인돌은 이른바 거석구조물(巨石構造物)로 세계 여러 곳에 널리 퍼져 있다. 이는 분명 여러 사람들이 모여 살고, 마을을 형성하게 됨에 따라 마을을 다스리는 마을의 우두머리, 즉 부락장이나 촌장과 다스림을 받는 피지배인들 사이에는 자연히 계급에 의한 공간분화(空間分化)가 집과 무덤에서 분명하게 이루어지게 됨으로써 나타난 구조물의 하나인 것이다.


    고인돌에서 출토되는 유물들이 주로 화살촉, 단검, 도끼 등의 무기들이고 거석들로 무덤을 만든 것으로 보아 수많은 사람들을 부릴 수 있는 무장한 남자들의 무덤, 곧 마을의 우두머리 무덤인 것을 말해 준다.


    고인돌은 북방식과 남방식으로 나뉘었는데, 북방식은 땅에 고임돌[支石]을 세워 석실을 만들고, 이 위에 넓은 판석인 뚜껑돌[蓋石, 床石]을 올려놓은 것으로, 고임돌로 둘러싸인 석실 공간에 주검을 모셨다. 이 북방식은 네 개의 고임돌과 뚜껑돌 모두가 땅 위에 노출되는 것이 특징이다.

    출처 : 한국건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