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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29

판소리가 구체적으로 정립이 된 시기는 언제인가요?

안녕하세요.


'판소리'가 역사에 있어서 구체적으로 정립이 된 시기는


언제인가요??


그리고 판소리를 정립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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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판소리는 17세기부터 등장한 한국의 전통 음악이자 연극으로, '소리꾼' 한 명이 북을 치는 '고수'의 장단에 맞추어 소리(노래), 아니리(말), 너름새/발림(몸짓)을 섞어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판소리의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무당이 굿을 하며 음악 소리에 맞추어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설과, 길거리 광대가 평민을 대상으로 풀어놓은 이야기가 원류라는 설, 그리고 이 둘이 서로 영향을 주며 발달했다는 혼합된 설도 있다. 그러나 이견의 여지가 없는 것은 판소리는 호남지방에서 그 예술적 형식이 정착되었으며,[1] 양반층이 아닌 일반 하층민을 대상으로 시작된 예술 문화라는 것이다. 18세기에 들어 판소리는 양반층에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고, 곧 판소리는 조선 전국에서 사랑받는 문화가 되어 현재까지 전해내려져 오고 있다.[2] 관극시(觀劇詩)라고 해서 당시 판소리를 감상한 느낌이나 작품의 내용을 양반이 한시로 써놓은 것도 있다.

    판소리를 구성하는 3요소는 소리꾼, 고수, 그리고 청중이다. 격식을 갖추기보다는 평민에게 널리 사랑받은 문화인 만큼, 판소리는 관객이 극 중간마다 '얼쑤!', '좋다!', '잘한다!' 등의 호응을 할 수 있다. 이를 추임새라고 부르며, 이는 소리꾼이 청중에게 이야기를 전달만 하는 일방적인 음악 예술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한 측면에서 판소리는 스페인의 플라멩코와 많이 비교되는데, 플라멩코 또한 관객이 '올레(Olé!)' 등 흥을 돋우는 추임새를 넣으며, 그 밖에도 민중의 정서, 특유의 한이 서린 슬픈 멜로디나 창법 등 유사점이 많기 때문에 판소리와 플라멩코를 접목한 공연이 상영되는 등, 여러모로 자주 크로스오버가 되기도 한다.

    춘향가 같은 경우 완창 시간이 최장 8시간 30분(8분 30초가 아니다!)[3]에 달할 정도로 방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프랑스 외교관이 멋모르고 춘향전 완창을 주문했다가 8시간 내리 지속되는 공연에 차마 지친 내색도 못 하고 진땀을 뺐다는 일화가 있다.

    흔히 외국인이 판소리를 평소 '민요'로 알고 있는 나머지 벌어지는 해프닝이다. 판소리는 엄밀히 말하자면 서양의 '오페라'와 유사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단지 오페라는 연기조차도 노래를 통해서 하고, 받쳐주는 음악이 서양 클래식 음악이며, 관객이 조용히 감상을 하는 것과 대조되어, 판소리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부분과 창을 하는 부분이 나뉘어져 있으며, 고수의 북소리와 '얼쑤' 하는 추임새를 제외하고는 별도의 음악이 없으며, 관객이 같이 추임새를 넣어주는 등 관중이 같이 참여하는 형태였다는 차이점이 있다. 물론, 제아무리 오페라가 길다고는 하나 판소리 완창만큼 길지는 않다. 16시간짜리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같은 작품이 있긴 한데, 4일에 나눠 공연하는 데다 애초에 여럿이 노래하는 악극이다. 한 번 시작하면(인터미션을 제외하면) 끝까지 쉬지 않고 진행하는데다 솔로인 판소리와는 양상이 좀 다르다.

    200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출처: 나무위키 판소리


  • 김선도 전문가blue-check
    김선도 전문가23.05.29

    판소리는 대표적인 한국 전통예술 중 하나로, 말하는 부분과 노래하는 부분을 결합하여 이야기를 전달하는 공중연극입니다. 하지만 판소리의 구체적인 정립 시기와 정립한 사람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판소리는 오랜 역사 동안 전해져 온 구전예술로서 전통적으로 전승되어 왔기 때문에 특정한 개인이나 시기에 정립되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판소리의 기원은 고려시대로 추정되며, 이후에 조선시대에 크게 발전하고 보급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판소리가 국가적으로 인정받아 전국적으로 유명한 장면들이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시기와 개인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판소리는 지역마다 다른 스타일과 변형이 있을 수 있으며, 지방별로 전승되며 발전해왔기 때문에 특정한 인물이나 시기보다는 전통적인 예술 형태로서의 판소리가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판소리

    판소리의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선 영조 30년(1754)에 유진한이 지은 춘향가의 내용으로 보아 적어도 숙종 시대에 토대가 되었을 것으로 본다

    판소리가 발생할 당시에는 한 마당의 길이가 그리 길지 않아서 판소리 열두 마당이라 하여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적벽가, 배비장타령, 변강쇠타령, 장끼타령, 옹고집타령, 무숙이타령, 강릉매화타령, 가짜신선타령 등 그 수가 많았다. 그러나 현실성없는 이야기 소재와 소리가 점차 길어지면서 충, 효, 의리, 정절 등 조선시대의 가치관을 담은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적벽가만이 보다 예술적인 음악으로 가다듬어져 판소리 다섯마당으로 정착되었다.

    그리고 현재는 판소리가 우리 역사와 희노애락을 함께해온 우리문화의 정수로 그 독창성과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2003년 11월 7일 유네스코 제2차 무형유산 으로 선정되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재효는 조선후기 '인물, 사설, 득음, 너름새'라는 4대 법례를 마련한 이론가입니다. 1812년(순조 12)에 태어나 1884년(고종 21)에 사망했습니다. 「광대가」를 지어 판소리의 이론을 수립하고 인물·사설·득음·너름새라는 4대 법례를 마련했습니다. 동편제와 서편제의 장점을 조화시키면서 판소리의 ‘듣는 측면’에다 ‘보는 측면’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판소리를 즐기면서 동시에 이론적 정리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판소리 여섯마당의 사설을 개작하여 체계적인 구성을 갖추게 한 결과, 판소리가 신분을 넘어선 민족문학으로 성장하는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