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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1.04
우리나라 족보 문화는 언제 시작된건가요?

한국에 여러 성씨가 많이 있습니다 김, 이 , 박, 최등 다양한 성씨들이 존재하는데 이런 성씨의 족보 문화는 언제부터 생긴거고 왜 생긴건가요?

  • 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23.12.06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족보의 시초는 중국으로 제왕연표라는 황족이 혈통계보 책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개인이 족보를 가지게 된 것은 한나라때 현량과 제도를 통한 인재선발에서 응시생의 가족 내력을 확인하는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연려실기술에 따르면 한반도에 족보가 처음 건너온것은 1562년 문화유보라고 하나 전하지는 않으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족보는 1472년 간행된 안동권씨의 성화보 입니다.

    족보는 각 유력 문중들이 어떻게 해서 유력자 집안이 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족보에 충실히 담겨져있으며, 양반 종가집에서 대대로 계승하는 족보는 금전적, 문헌학적, 서지학적, 사회학적으로의 상당한 가치를 지닙니다.


  •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의 족보(族譜)는 중국(中國)의 성씨제도(姓氏制度)라 할 수 있는 한식 씨족제도(漢式 氏族制度)를 근본으로 삼고 발전하여 정착했는데, 그 시기는 1000여년(餘年)전(前)인 신라말(新羅末)·고려(高麗)초기(初期)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것은 삼국사기(三國史記)나 옛 문헌(文獻)에 보면 고구려나 백제 계통의 성(姓)은 그 계보(系譜)가 후대(後代)와 거의 연계되고 있지 않으며 다만 신라의 종성(宗姓)과 육성(六姓)[이(李), 최(崔), 정(鄭), 설(薛), 손(孫), 배(裵)]및 가락국계(駕洛國系)의 김해김씨(金海金氏)만이 후대의 계보(系 譜)와 연결 됨을 알 수 있다.



    그 이후(以後)로부터는 귀족(貴族)사이에서 가첩(家牒)이나 사보 (私報)로 기록(記錄)하여왔는데, 이러한 가계(家系) 기록(記錄)은 고려시대(高麗時代)를 거쳐 조선(朝鮮) 중기(中期)에 오면서 족보(族譜)형태를 갖추는 가승(家乘)·내외보(內外譜)· 팔고조도(八高祖圖)로 발전 하게 된다.



    족보(族譜)의 발행(發行)은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조선초기(朝鮮初期)인 세종 5년 (1423년)의 문화류씨 영락보(文化柳氏 永樂譜) 부터 간행되기 시작했고, 그후 1476년(성종 7년) 안동 권씨성화보(安東權氏成化譜) 가 체계적인 족보형태를 갖추었으며, 현존하는 최고(最高)의 족보로는 문화류씨 두번째 족보인 1562년(명종 17년 간행의 10책)의 가정보(嘉靖譜)이다.



    이밖에 조선(朝鮮)초기(初期) 간행(刊行)된 족보(族譜)는 남양홍씨(南陽洪氏,1454), 전의이씨(全義李氏,1476), 여흥 민씨(驪興 閔氏, 1478), 창녕 성씨(昌寧 成氏, 1493)등의 족보(族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