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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호저172
까칠한호저17223.05.02

몽골제국은 공성전에도 강한 모습을 보였나요?

몽골군은 여러 마리의 말을 끌고 다니며 뛰어난 기마기술과 궁술로 평야에서는 당할 수 없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 국가들이 성을 쌓고 살았을텐데 공성전에도 강해서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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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공성무기로 직접 성벽을 공격했습니다.

    흑사병으로 죽은 시체들을 투석기로 투척해서 생화학공격을 하기도 했습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02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몽골군에게도 취약한 부문이 있었는데 바로 공성전과 해상전이었고 해상전은 공성전과 달리 멸망 직전까지 매우 약했다. 단, 공성전은 징기즈칸이 몽골부족들을 통일하던 당시에는 성을 공략하는 경험도 부족했거니와 공성무기 제조 기술력도 부족해 공성전은 잼병수준이었다. 그러나 중국을 지배하던 금을 침공하면서 얻은 중국인 기술자들을 대거 등용한 뒤 이를 통해 공성무기 지식을 얻게된 것과 이후 호라즘, 금나라 멸망을 위한 전쟁, 러시아 정벌 등 여럿 공성전을 경험하면서 몽골제국군은 엄청난 경험을 쌓게되면서 공성전은 더이상 취약점이 아니게 되었다. 특히 호라즘까지 정벌한 이후로는 과학기술이 높던 무슬림들을 대우하여서 회회포라는 강력한 투석 공성무기를 얻게되면서 승승장구하였다.

    공성은 주로 4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공성무기로 성벽을 직접 공격하고, 갱도를 파며, 성벽 아래를 파내려가 붕괴를 유발하고, 사방에서 사다리를 걸어 병사들이 올라가는 방식이 그것이다.

    공성무기로 노포, 투석기 등을 사용했으며 화약을 쓰기도 했다. 화전을 쏘거나 쇠로 만든 폭탄, 나프타 단지 등을 투석기로 발사했으며 바그다드 공성전에서는 투사체를 찾을 수 없게 되자 근처의 야자수를 잘라 불을 붙여 쐈다. 남송과의 전투에서는 아랍인들이 만들어낸 회회포로 한족의 견고한 요새를 때려부쉈다. 이미 소이탄 형식의 폭약이 사용되었고, 연막과 악취를 동반한 무기도 있었다. 이는 유럽인들로 하여금 악마의 자식이라는 생각을 더욱 더 굳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몽골군의 공성에서 가장 크게 두드러지는 특징은 피정복민을 최대한 활용했다는 것이다. 몽달비록에는 큰 성을 공격하기에 앞서 근처의 마을과 도시들을 먼저 공략하고 병사 1명당 10명의 포로를 확보하게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는 러시아의 노브고로드 연대기와도 일치하는 기록으로, 그렇게 잡혀온 포로들은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다. 이들은 각자에게 부과된 풀과 땔감, 흙, 돌을 모아와야 했으며 공성전의 가장 위험한 작업에 투입되었다. 성벽 아래의 해자를 메우고 참호를 파야 했는데, 아무리 많은 수가 죽어도 슬퍼하지 않았으며 일하는데 굼뜬 자는 주저없이 죽였다고 한다.

    여러 거점을 동시에 공격하는 전법은 적을 패닉에 빠뜨리고 지원군을 차단하는데 효과적이었다. 적의 움직임을 종잡을 수 없게 된 수비대의 지휘관들이 각자의 담당구역을 방어하는데 전념하는 사이 몽골군은 재빠르게 작은 거점들을 각개격파한 후 남아있는 요새들을 고립시켰다. 이런 방식은 대량의 피난민을 발생시켜 적에게 공포감으로 인한 공황을 일으키는 효과도 있었다. 난민들은 공포를 확산시키는 한편 적의 식량사정을 더욱 어렵게 했다.

    흑사병으로 죽은 시체들을 투석기로 적의 성내에 투하해 흑사병으로 성내를 초토화시키는 작전도 썼다.

    출처: 나무위키 몽골제국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