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쓰라.태프트 밀약은 무엇인가요?
구한말 시대부터 우리나라를 두고 외국 강대국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만 행동을 했습니다. 이에 우리나라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지들끼리 북치고 장구치고 다 했습니다.
그런 대변하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1905년 7월 29일, 미국의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특사인 미국 전쟁부(United States Department of War) 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와 일본 제국의 총리 가쓰라 다로가 도쿄에서 은밀하게 맺은 협정입니다. 실제 회담이 열린 날짜는 7월 27일이고, 회담 내용을 담은 각서(memorandum)상의 날짜가 7월 29일입니다. 당시 태프트는 전쟁부 업무로 필리핀에 가는 길에 잠시 일본에 들러 이 협약을 맺었습니다.
이 밀약의 목적은 일본 제국의 한국 식민 지배와 미국의 필리핀 식민 지배라는 양국의 이해 관계에 대한 상호 확인이었습니다.
일단 ‘형식상’으로는 외교 회담 또는 각서 수준에 그치므로, 제3국과의 조약시 상호간 승인을 거쳐야 하는 한일의정서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이 기록에 따른다면 새로 서명된 조약이나 협정 같은 것은 없었고, 아시아 지역에서의 이익 관계를 주제로 일본과 미국 사이에 오고간 대화에 관한 각서만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형식에 주목하여 가쓰라 - 태프트 비망록, 가쓰라 태프트 비 각서라고도 불립니다.
밀약인 만큼, 상당 기간 동안 공개되지 않다가 미국 역사학자 타일러 데네트(Tyler Dennett : 1883년 ~ 1949년)에 의해 1924년에야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 밀약으로 인해 일본의 대한제국 병합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협상국 일원으로서 일본이 1921년 워싱턴 회의 이전까지 승승장구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러시아 견제를 위해 일본의 팽창을 묵인한 미국은 결국 일본에 의해 자국 젊은이들의 막대한 희생을 야기하게 되는 대전쟁에 휘말리게 되면서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출처: 나무위키 가쓰라 태프트 밀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