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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한표범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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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렛 대처의 업적에 대해서 정리해주세요

안녕하세요 ! 이 질문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마가렛 대처의 업적에 대해서 정리해주세요. 현재 정치에 미치는 영향까지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럼 좋은하루되시고 행복하세요 ! 정성스러운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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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육아·아동전문가입니다.

      마거릿 대처는 철의 여인이라 불릴 정도의 리더십으로 유명한 정치인입니다. 대처 집권 전의 영국은 일명 복지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재정이 사회복지 쪽으로 과도하게 흘러가 영국경제와 사회는 활력을 잃어갔지요. 이러한 상황에서 집권한 대처는 레이건노믹스라고 알려진 신자유주의 정책을 과감하게 밀어붙입니다.

      각종 공공영역을 민영화해 재정 부담을 줄인 것이 대포적인데 이에 대한 저항이 거셌고 탄압이라고 할 정도로 진압했죠. 석탄노조를 탄압해 와해시킨 것이 대표적이고 이를 다룬 영화도 꽤있죠.

      영국 신보수주의의 주창자이자 실행자인 대처는 레이건노믹스와 함께 노동에 대해 자본이 우세한 시대를 열었고 이는 지금까지 이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마거릿 대처 초상화

      영국 첫 여성 총리였던 마가렛 대처(Margaret Hilda Thatcher),

      러시아가 "철의 여인"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죠.

      1979년부터 1990년까지, 3선 연임 총리로 재임하면서,

      긴축재정, 물가안정, 소득세감면, 소비세와 간접세 증세, 금리인상, 작은 정부, 실력존중, 성과제도 도입, 기업업무간소화를 실행해내었습니다. 2차대전 이후, 대영제국의 몰락과 인플레이션이 겹쳐 영국이라는 체제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서, 부패혐의자 해임, 파면과 정부 규모를 축소하여 경제 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인플레이션도 잡았습니다.

      1982년 포클랜드전쟁에서 아르헨티나와 싸워 승리하기도 했죠.

      영국 정치사에, 11년 7개월간 재임한 최장수 총리였습니다.

      '철의 여인'은 영화화되었죠.

      철의 여인은 카리스마가 뛰어났는데, 철저한 준비와 언변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켰기때문입니다.

      근면 검소, 책임의식, 자조정신의 가훈을 잘 실천했습니다.

      이로써 신자유주의가 영국을 지배하게 되었고, 그 결과는 노조에 의한 노사분규를 막고, 기업친화적 정책으로 경제를 회복시켰습니다.

      정치는 영국에서 타협주의가 중심이 되어 토론을 통해 합의하는 것이었지만,

      대처는 타협주의를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매사에 초강경 대응하고 공격적이었으므로, 유연성이 없었습니다.

      세계에서 국영기업이 가장 많은 나라였던 영국은 실업자가 160만명에 달하고 이자율과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소위 ‘영국병’에 걸려있었기때문에 대처는 작은 정부, 시장경제 및 경쟁주의,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강제했습니다.

      경쟁력을 갖도록 하기 위하여, 가스, 전기, 통신, 수도, 석탄, 철강, 항공, 자동차 등 국영기업이었던 영국의 기반산업을 대부분 민영화했습니다.

      대처리즘으로 표현될 정도로, 당대에 생각할 수 없었던 방법을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고 단행해 버린 것이죠.

      미국에는 레이건 대통령이 신자유주의정책을 실시했고, 동시대에 보수적 시대정신을 구현해 내었습니다.

      여기에는 반공주의도 한 몫을 했습니다.

      영국 보수당 당대표에 선출된 후, '헬싱키 선언'을 비판했는데, 러시아 국방부 기관지에서 그녀를 '철의 여인'이라고 부정적 이미지로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대처는 그 닉네임을 오히려 마음에 들어했다고 하고, 이후 미디어가 이 닉네임을 그녀의 대명사로 사용했습니다.

      당연히 빈부의 격차가 커졌고, 노조운동은 파괴되었으며, 시대의 흐름과 역행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영국 노동당은 '노동자의 적'이라고 부릅니다.

      지금의 영국은 대처리즘으로 대변되는 극단적 시장자유주의가 가져온 결과라고 할 수도 있겠죠.

      그녀에게는 '신자유주의 마녀'라는 별명도 따라붙습니다.

      '현대 영국의 설계자'라고도 불리죠.

      조금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었기때문에,

      이후 세계화로 빠른 속도로 변하는 세계 정치경제사회의 흐름을 영국은 따라잡지 못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노조 약화, 런던금융, 자본시장의 발달은 1997년 노동당집권을 허용하게 되는 원인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영국 보수당 최초의 여성 당수 출신이기도 하며,

      자신도 실패한 정책이라고 고백한, '우유도둑' 정책은 1970년 교육과학부장관시절에 교육예산 삭감을 위해 우유무상급식을 폐지한 것을 말합니다.

      영국의 우유는 한국의 김치인 셈인데, 대처의 단호함을 수상이 되기 전부터 확인해 볼 수 있는 대목이죠.

      철의 여인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립니다.

      당대의 영국을 구원해낸 구세주와 같은 존재일 지 모르나, 이후 영국의 정치경제사회의 근간을 약화시켰다고 볼 수도 있죠.

      진정으로 신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지향했다면,

      세계경제와 세계정치, 그리고 사회변화와 발맞추어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철의 여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언제나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세상 누구도 나를 굴복시킬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