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에도 조선인들이 국가대표 선수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일부 조선인들은 일본 국적을 취득하여 일본 대표팀에서 활동하기도 했고, 다른 조선인들은 조선체육회 소속으로 조선 대표팀에서 활동했습니다. 축구에서는 조선인들로 구성된 축구팀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왕배에서 우승을 차지한 적이 있고, 한국인들은 일제시대에도 가장 축구를 잘했으며 만주로도 이주해 중국 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제 강점기 말 조선 총독 미나미(南次郞)는 1939년 11월 10일자 제령(制令) 제19호로써 「조선민사령(朝鮮民事令)」을 개정하였는데 그리고 다음해인 1940년 2월 11일부터 8월 10일까지 모든 조선인이 일본식 씨명(氏名)으로 창씨하여 호적계에 신고하도록 강요하였다고 합니다..조선인들도 창씨 개명을 한후에는 일본 국적을 취득 한 것이나 마찬 가지 이기에 일본인 국가 대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손기정은 한국인이었으나 당시 한국은 일제강점기 시기였기 때문에 일본어 이름인 손 기테이(일본어: 孫 基禎, そん きてい)라는 이름을 쓰고 일본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해야 했습니다. 다른 종목의 선수들도 마찬 가지였습니다.
김용식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지도자이다. 한국이 일제강점기인 시절에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긴 요쇼쿠라는 이름으로 1936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였다. 해방 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플레잉코치로 발탁되어 1948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였다. 이후 대표팀 감독을 맡으며, 1954년 FIFA 월드컵, 1960년 AFC 아시안컵 등의 국제 대회에서 지휘를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