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7년 삼전도 굴욕 이후 병자호란 치욕을 씻기 위해 북벌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습니다. 특히 1649년 즉위한 효종 때 송시열, 송준길 등 서인은 북벌의 이념적 명분적 기반을 마련하였으며, 병조판서 이완은 군사력 강화를 주도했습니다.
하지만 청은 명을 명말시키고 중원을 장악하며 더욱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게 되어 북벌은 사실상 역부족이었습니다. 또한 북벌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군비가 필요한데 조선의 경제력은 오랜 전쟁으로 악화된 상태였습니다. 효종은 대동법 시행, 화폐개혁 등 경제 개혁을 시도했지만 한정된 재정으로는 대규모 원정을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또한 서인들은 북벌론을 통해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려는 수단으로 활용하였으며, 북벌에 반대하는 세력들도 확대되어 의견 댈비이 발생했습니다. 특히 효종 사후 예송문제로 서인 세력이 정권에서 밀리면서 북벌론은 사그라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