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왕릉은 단순하고 소박하며 상징적 요소인 호석으로 12지신상 등이 중심을 이룹니다. 봉분은 크지만 석물은 장명등, 문인석 등 소수만 배치하였습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소박하고 상징저그 자연과 조화를 중시하였습니다.
이와 비교하여 조선 후기 융건릉은 봉분 앞에서 상석, 석등, 문무인석, 석수 병풍석 등 다양한 석물을 정교하게 배치하였으며, 병풍석에는 모란, 연꽃 등 화려한 문양 새겼습니다. 진입로에 홍살문, 향로, 정자각 등 의례 공간과 부속시설 발닳하였으며, 풍수에 따라 연못 다리 등 주변 조경도 중요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