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예종 때 여진의 정벌, 인종 때 이자겸(李資謙)의 난과 묘청(妙淸)의 난 등으로 무신의 지위가 크게 상승하였다. 그러나 문존무비(文尊武卑)의 풍조는 조금도 개선되지 않고 문신들의 무신에 대한 횡포는 더욱 심해졌다. 문신들의 무신에 대한 개인적인 모욕은 고사하고라도 군사행동에서 문신이 지휘관이 되고 무신은 아래에서 지휘를 받았다.
그리고 군인들이 적과 싸워 공을 세워도 불력(佛力)에 의한 것이라 하여 그 공을 부처에 돌리는 수가 많았다. 특히, 난이 일어날 무렵 문신귀족의 횡포와 수탈은 농촌경제를 크게 압박해 유민(流民)이 속출되고 농민 반란이 일어나는 등 사회가 동요되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예종 때부터 나타나 의종 때는 자못 심각해 문신귀족정치에 큰 위협이 되었다. 이러한 원인들은 마침내 난으로 폭발되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