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립 모반 사건은 동인과 서인의 당쟁의 결과라고 할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이유는 임진 왜란 3년전인 1589년에 정여립은 자신이 제안한 농민군 조직을 하자는 제안이 받아 들여 지지 않자 불만을 품게 됩니다. 정여립은 당시 동인 중에서도 급진적인 개혁파에 해당 했습니다. 이러한 불만 과정에서 정여립은 잡혀서 모반을 계획했다는 사실이 들어 나게 되었고 이 조사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게 되고 다수의 동인 세력이 숙청 되고 유배 되면서 이를 계기로 서인들이 정권을 잡게 됩니다.
정여립의 모반 사건은 1589년 동인-서인 간 극심한 붕당 갈등 속에서 발생했습니다. 정여립의 '천하공물' 사상과 대동계 조직에 대한 경계심, 그리고 서인의 동인 제거를 위한 정치적 모함 가능성이 주된 원인으로 꼽힙니다. 이 사건으로 서인이 권력을 잡으며 붕당 정치가 심화되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