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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남생이120
조용한남생이12023.03.26

순장이라는 풍습이 있을 때 같이 묻히기 싫어하던 사람은 그냥 생매장을 하였나요?

우리 나라의 예전의 장례 풍습 중에 순장이라고 집안의 높은 신분인 사람이 죽으면 그 밑에 노비들 까지 같이 묻는 것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 당시 같이 묻히기 싫었던 사람은 어떻게 하였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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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8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같이 묻는 사람은 시종, 궁녀, 노예라든가 무덤의 주인공이 왕 등 높은 사람이면 그 신하나, 심지어 생전의 가족까지 같이 묻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는 생매장이지만 순장하기 전에 같이 묻을 사람들을 먼저 살해한 뒤 시신을 묻기도 합니다. 이는 순장된 시체의 깨진 두개골 등 여러 상처를 통해 알 수 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조선시대에는 순장이라는 상위 계층 인사가 죽으면 순장이 살던 집안의 노비들이 같이 묻혀지는 관행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순장의 죽음에 따른 집안의 위기를 방지하고, 순장의 유골이 집안에 머무르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관행은 노비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었으며, 노비들 중에서는 이에 반발하여 같이 묻히기 싫어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 대개는 노비 주인이나 집안의 다른 인사들과 협상하여 노비들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해결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대개는 특별한 경우에만 가능한 것이었으며, 대부분의 노비들은 이 관행을 수용해야 했습니다.

    이후 조선시대 말기에는 이러한 관행이 불법화되었으며, 대신에 대신인을 선정하여 묻는 대신에 그에게 일정한 보상을 주는 방법이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는 노비 제도의 혁신과 함께 이러한 관행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중국에서 들어온 순장이란 풍습은 내세를 믿은 문화의 잔인한 장례풍습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부여 가야 고구려 신라시대에 순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권력이 높을수록 함께 순장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죠. 순장은 이후 농경사회의 발달로 인간의 농경노동인구가 중요하게 되었고 불교의 교리가 살생을 금했기때문에 신라시대 지증왕때 되어서야 금지하게 됩니다.

    당시 조선시대에서 순장을 거부한 내용까지는 잘 모르겠으나 중국에서는 황제가 죽었을 당시 후궁이 따라 순장되고 했는데 이때 따라 죽기 거부하는 후궁이 있었다고 합니다. 거부한다해도 먼저 자결을 강요하거나 그도 따르지 않으면 굶어죽게 했다고 합니다. 순장이 결정된 후궁에게는 마지막으로 호화로운 만찬을 준비한후 별궁같은곳에 가두게 되는데 그곳에 목을 맬수있는 밧줄이 있었다고 합니다. 절망한 후궁이 밧줄에 목을 매거나 순장을 거부하고 버틸시 굶어죽게 한것이지요.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내시가 목을 졸라 죽였다고 하네요. 참 잔인한 제도입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순장은 신분이 높은 사람이 죽으면 그가 거느리고 있던 노비나 신하들을 무덤에 같이 묻는 풍습으로 부여에서는 왕이 죽었을 때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산채로 왕과 함께 묻히기도 했으나 , 굳이 산채로 묻히지 않고

    어떤 죽음을 뒤따라 다른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강제로 죽여서 주된 시체와 함께 묻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순장을 당하는 사람들의 신분은 주인의 시중을 들던 여성[婢妾], 시종, 시녀, 시동 등 가내 노동자와 무사, 마부, 창고지기 등으로 무덤 주인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인물들로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고대 사회에서 주인의 명령을 거역 하기 어려운 신분 이였고 혹시 라도 싫다고 하면 대신 다른 가족이나 친지가 순장을 당하기에 거부하기도 쉽지 않았을 거라고 판단 됩니다.


  •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순장은 고대적 장례문화입니다. 중세에는 사라집니다. 순장은 초기 철기국가부터 있어온 장례문화인데 이는 지배자의 권세를 과시하고 죽음 이후에도 모시라는 의미이지요. 오랫동안 있어오다 순장이 금지되는데 사료로는 6세기 신라 지증왕이 금지시킵니다. 이는 중세적 전환이라고도 볼 수 있으며 한편으로 노동력을 중요시한 조치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생명존중보다 노동력의 희생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금지된 것이지요. 그 이후 순장의 풍습은 점차 사라진 것으로 보입니다. 순장에 희생되는 이의 인권이나 의사는 존중받지 못한 시대라고 보시면 됩니다.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순장(殉葬)이라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는 죽은 사람의 부인이나 첩, 노비, 신하들이 그 사람과 함께 묻혀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 풍습은 왕실을 비롯한 상류층에서 행해졌으며, 특히 왕과 왕비, 왕자, 왕녀 등의 경우에는 그 가족 구성원들이 모두 함께 묻혀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순장에 찬성하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묻히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생매장(生妻葬) 당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생매장이란, 죽은 사람의 부인이나 첩이 그 사람과 함께 죽이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부인이나 첩이 그 사람과 함께 묻히기를 원하지 않을 경우에 행해졌으며, 그들이 살아서 남아있을 경우 다른 남자와 다시 결혼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생매장은 비례적으로 덜 일어났으며, 이는 불법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발견되면 엄벌을 받을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묻히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생매장을 선택하는 대신 몸을 숨기거나 다른 방법으로 숨어서 살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부여에서 이러한 순장이라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모시던 주인이 죽으면 그를 모시던

    종들을 저승에서도 모시라는 의미로 같이 묻었다고 하는데 차츰 이러한 제도는 그 폐해가 인정되어 없어졌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