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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몽구스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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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르트 도굴사건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오페르트 도굴사건의 배경과 그로 인해 후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알고싶습니다.

당시 어떤 배경으로 이런 사건이 벌어진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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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답변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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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오페르트 도굴사건이 무엇인지 궁금하군요.

    독일의 상인이던 오페르트가 흥선 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무덤을 도굴한 사건을 말합니다. 오페르트는 1851년부터 상하이에서 상업 활동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1866년과 1868년 두 차례에 걸쳐 조선에 통상 수교를 요구하며 이양선을 타고 조선 해안가에 접근했습니다. 특히 오페르트는 1868년 4월, 조선이 천주교를 탄압한다며 구만포에 상륙해 덕산 군청을 습격하고, 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 했으나 묘가 생각보다 단단해 실패하고 돌아가 버렸다고 합니다. 대원군은 이를 계기로 서양에 대한 경계를 더욱 강화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독일의 사업가 오페르트는 두 차례(1866. 3월과 8월)나 조선에 들어와 개항과 통상을 요구했으나 모두 거절당하였습니다. 그러자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여 부장품을 탈취하여 이것을 가지고 조선과 협상하여 조선을 개항하고 하였하였습니다.

    이에 병인박해를 피해 탈출한 프랑스 선교사 페롱, 미국인 자본가 젠킨스의 지원을 받아 무장한 선원들을 데리고 1868년 5월 8일 덕산군 관아를 습격하였습니다. 또한, 흥선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무덤을 도굴하려 했으나 주민의 항거로 실패하였습니다. 이 일로 조선에서 서양인에 대한 반감이 더욱 확산되었고, 흥선 대원군도 서양 세력에 대해 더욱 강경한태도를 갖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