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 정말 '바람둥이' 인가요?
아인슈타인과 결혼한 부인있어도 다른 여자와 바람피우고,
또 바람피운 여자도 재혼하고, 재혼으로 살다가 비서와 또 바람피웠다고 하네요.
바랑둥이 맞나요?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아인슈타인은 두번의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그의 과학적 업적과는 별개로, 한 인간으로서 가장 크게 비판받는 부분이라면 아무래도 결혼 생활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혼을 두 번 했는데, 우선 첫 번째 부인 밀레바는 결혼하기 전부터 아인슈타인의 집안 쪽에서 그녀에 대한 반대가 있었다고 한다. 가장 큰 이유는 밀레바가 아인슈타인보다 나이가 많고, 아인슈타인과 동시에 물리학을 전공했으며, 세르비아계 외국인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22] 일설에 의하면 아인슈타인의 어머니가 밀레바를 '늙은 마녀'라고 불렀다는 기록도 있다. 밀레바는 1900년 대학 졸업 시험에서 떨어져 다시 졸업장을 따려고 시험 준비를 할 생각이었는데, 1901년 아인슈타인과의 사이에서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인해 시험 준비가 좌절되었으며, 1903년에 둘은 결혼했다.
아인슈타인은 일반적으로 너무 연구에만 매달려 부인이나 가정에 소홀했다는 식으로 알려져 있는데, 연구도 연구지만 아인슈타인은 유대인으로 제1차 세계 대전 도중 중립국으로 피신했고, 첫 번째 아내인 밀레바와 떨어져 있는 시기 동안 친척 누나이자 당시 과부였던 엘자와 친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엘자와 결혼하기로 결정하면서 밀레바를 소홀히하고 결국 이혼하게 된다. 그렇게 1919년 밀레바와 이혼한 후 같은 해에 엘자와 결혼했다. 물론 위인전 같은 책에서는 이런 일을 상세히 기술하기 곤란하므로, 대부분 연구에 몰두하다 보니 가정에 소홀해 사이가 멀어져서 이혼했다는 정도로만 기재하는 편이다.
문제는 이혼 후 밀레바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에게[24] 신경을 써 주지 않아 밀레바와 자식들을 고생시켰다는 것. 그녀는 아인슈타인과 이혼한 이후 피아노 가정 교사로 활동하며 자식들을 홀몸으로 키웠는데, 밀레바와 이혼할 당시 아인슈타인이 이후 노벨상을 받게 되면 그 상금을 모두 밀레바에게 양도하기로 계약했기 때문인지 나중에 그녀가 경제적인 지원을 요청해도 들어준 적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밀레바와 자식들이 아인슈타인을 평생 미워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인슈타인과 밀레바 사이의 차남이었던 에두하르트는 정신분열증을 심하게 앓는 바람에 밀레바와 장남 한스를 힘들게 했다. 결국 에두하르트는 20대에 집에서 느닷없이 발작을 일으켜 난동을 부리고 어머니 밀레바의 목을 졸라서 죽이려 했던 일 때문에 형 한스의 신고로 출동한 스위스 경찰에게 체포되어 평생 스위스의 정신병원에 사실상 수감되다시피 입원한 채로 살다가 1965년, 55세의 나이에 뇌졸중으로 죽었다. 그래도 밀레바는 차남 에두하르트를 아껴 그가 정신병원에 수감되었을 때도 스위스에서 살며 정기적으로 아들을 찾아오며 돌봐주었고 1948년에 73세로 사망할 때도 스위스에서 죽었다.
밀레바의 장남 한스는 부모의 뛰어난 지능을 물려받아 총명해서 버클리 주립 대학에서 수력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나중에 뛰어난 토목공학자가 되었다. 특히 한스는 아버지 아인슈타인과 달리 결혼 생활은 원만했고, 아내와 자식들과 손자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비록 정신분열증을 앓던 동생 에두하르트 때문에 힘들어하기도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을 생각해주어 스위스로 어머니에게 생활비와 동생의 병원비를 보내주었고 동생이 말년에 가서 건강이 악화되었을 때는 병원비를 스위스 정부로부터 지원받게 해주고 스위스의 요양원으로 옮겨주어 살게 했다. 게다가 1965년에 동생이 사망했을 때 지역 신문에 장문의 글을 쓴 부고를 실어 동생의 죽음을 슬퍼했다.
하지만 한스는 자신과 어머니와 동생에게 무관심했던 아버지를 평생 미워했고 부모 취급도 하지 않았다. 특히 결혼하고 손자를 얻어도 아버지에게 연락하거나 찾아가지 않았으며 아인슈타인의 부고를 듣고도 전혀 슬퍼하지 않았고, 장례식장에 찾아가지도 않았으며 나중에 신문에 짤막한 애도문을 몇 줄 낸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아버지의 무책임한 도피 이후 일련의 불행을 겪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아인슈타인의 죽음을 보면 알 수 있듯 아인슈타인 본인도 여생에 큰 미련은 없었던 것 같다. 이처럼 아인슈타인은 과학자로서 높은 성취와는 별개로 아내와 자식들에게 좋은 남편이자 아버지가 아니었던 인물이다.출처: 나무위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실제 여자관계가 복잡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140522.html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인슈타인은 1903년 학문적 동반자였던 밀레바 마리치와 결혼해 두 아들을 낳은 후 1919년 이혼, 넉달만에 사촌 엘자와 재혼했고 그 후 비서 베티 노이만과 비밀스런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일부에서는 바람둥이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인생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의 개성적인 삶과 연구에 대한 열정 등, 독특한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천재적인 물리학자로, 상대성 이론과 질량-에너지 상관 관계 등 혁신적인 발견으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그의 개성적인 삶과 연구에 대한 열정으로 인해, 일부에서는 불규칙한 삶을 살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은 자유롭고 개성적인 삶을 추구하기 위해, 직장에서 일을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그의 가족은 가난한 생활을 했으며, 이를 감안하더라도, 아인슈타인의 천재성과 열정은 그의 유명성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그의 개성적인 삶과 연구에 대한 열정으로 인해, 일부에서는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개성적인 삶과 연구에 대한 열정을 존경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은 그를 바람둥이로 여기기도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여성편력을 보여주는 편지 1천 4백통이 공개됐다고 합니다 이 편지들에는 아인슈타인이 두번째 결혼생활 중 만난 6명의 여인들과의 연애담이 담겨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아내 엘자에게 "자신은 원치 않는데 여성들이 애정공세를 퍼붓는다"고 변명하기도 하는데요. 아인슈타인은 학문적 동반자였던 첫번째 부인과 결혼 16년만에 이혼하고 내연의 관계였던 두번째 부인과 재혼한 뒤에도 끊임없이 염문을 뿌렸다고 합니다. 제 생각에도 아인슈타인은 바람둥이가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