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국민근로보국령은 무엇이었나요?
일본의 국민근로보국령은 무엇이었나요?
당시 사회의 배경과 이러한 보국령이 나오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국민근로보국령으로 사회가 어떻게 변하게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일전쟁 후 일제가 조선인의 노동력을 수탈하기 위해 강제로 끌고 가서 만든 노역 조직.
1941년 일본은 '국민근로보국령'을 발효하고 조선인을 강제로 끌고 가 근로보국대를 조직했다. 주로 도로·철도·비행장·신사(神社) 등을 건설하는 데 동원되었으며 몇몇은 일제의 군사시설에 파견되었다.
계층별로 다양한 조직을 두었는데 직장보국대, 국민학교 고등과와 전문학교·중등학교 고학년의 학도보국대, 형무소 재소자들로 구성된 남방파견보국대, 농민들로 구성된 농민보국대 등이 있었다. 농민보국대는 징용에서 제외된 자들로 구성되었으며 정해진 기간도 없이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했다. 1938∼1944년까지 약 762만 명이 강제 연행되었다.[네이버 지식백과] 근로보국대 [勤勞報國隊]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41년 일제는 ‘국민근로보국령’이라는 미명으로 국민학교 고등과에서 전문학교·중등학교 고학년에 이르는 학도보국대, 형무소 재소자들을 전쟁터로 꿀고 가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전쟁물자 조달을 위한 수탈과 징병과 징용 등 강제동원으로 800만 명의 우리 동포가 일본에 의해 목숨을 잃었으며, 약 5백만 명의 동포가 조국을 떠났다고 합니다. 노동자, 군인, 군속으로 강제 동원되었거나 총알 받이로 강제로 끌려 간 한국인 피해자는 104만 9,475명 입니다. 점점 2차 대전의 전세가 불리해지자 이렇게 까지 민감인들을 전쟁터로 내몰게 된 것입니다. 결국 전챙터에서 희생자만 더 늘어 가게 됩니다.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41년 일본은 '국민근로보국령'을 발효하고 조선인을 강제로 끌고 가 근로보국대를조직했습니다. 주로 도로·철도·비행장·신사(神社) 등을 건설하는 데 동원되었으며 몇몇은 일제의 군사시설에 파견되었습니다.
계층별로 다양한 조직을 두었는데 직장보국대, 국민학교 고등과와 전문학교·중등학교 고학년의 학도보국대, 형무소 재소자들로 구성된 남방파견보국대, 농민들로 구성된 농민보국대 등이 있었습니다. 농민보국대는 징용에서 제외된 자들로 구성되었으며 정해진 기간도 없이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