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남찬우 전문가입니다.
김승옥 작가가 던진 '무용(無用)의 행위'라는 화두는 역설적이게도 문학이 가진 가장 날카로운 무기입니다. 효율성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문학이 어떻게 '쓸모없음의 쓸모'를 증명하며 우리를 구원하는지, 그 구조를 세 가지 측면에서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1. '기능'이 아닌 '존재'로의 회귀입니다.
자본주의와 기술의 논리 안에서 인간은 대개 '수단'으로 정의됩니다. 직업, 연봉, 성과 지표 등 숫자로 환산되는 가치만이 '유용성'의 척도가 되죠.
문학은 사회적 유용성이라는 갑옷을 벗어도 되는 유일한 성소입니다. 아무런 생산성 없는 고민에 몰두하고, 슬픔을 탐닉하며, 실패를 곱씹는 행위는 효율성의 관점에서는 '낭비'입니다.
여기서 발견되는 인간성이란 '대체 불가능한 단독성'입니다. 데이터는 우리를 통계적 집단으로 묶지만, 문학은 100만 명 중 한 명으로서의 '나'가 느끼는 미묘한 고독에 집중합니다.
2."자기 구원을 위한 무용의 행위"가 어떻게 타인과의 연대로 이어질까요? 이는 고통을 다루는 문학만의 독특한 방식 때문입니다.
작가가 자신의 가장 깊고 무용한 내면을 파고들 때, 독자는 그 속에서 자신의 숨겨진 상처를 발견합니다. "나만 이런 게 아니었구나"라는 안도감은 데이터가 주는 위로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실용적인 지식은 '어떻게(How)'를 가르치지만, 문학은 '왜(Why)'와 '아픔(Pain)'을 공유하게 합니다. 타인의 고통에 비효율적인 시간을 쏟아붓는 행위 자체가 인류를 묶는 강력한 연대의 끈이 됩니다.
3. 효율적인 언어는 명확하고 단정적입니다(e.g., 매뉴얼, 보고서). 반면 문학의 언어는 모호하고 다층적입니다. 인간의 삶에는 '기쁨'이나 '슬픔'이라는 단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회색지대가 존재합니다. 문학은 이 쓸모없어 보이는 감정의 찌꺼기들에 이름을 붙여줌으로써, 우리가 무의미하게 소멸하지 않도록 붙잡아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