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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문어80
조용한문어80

임꺽정은 관군에게 토벌 되었나요??

임꺽정이 도적생활을 하면서 관군까지 죽인 걸로 아는데요.

당시 임금이었던 명종까지 임꺽정을 알고 있었다고 하는데 결국 관군에게 토벌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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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수한낙타174
    순수한낙타174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꺽정은 조선 명종 때의 의적(?~1562)으로 백정 출신이었습니다.

    일부 백성을 모아 황해도와 경기도 일대에서 탐관오리를 죽이고 그 재물을 빼앗아 빈민에게 나누어 주는 일을 하다가, 토포사 남치근에게 붙잡혀 죽었습니다다. 결국 관군에게 죽은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꺽정은 한양까지 진출하였으나 부하들과 참모인 서림(徐林)까지 붙잡혀 기세가 꺾였고, 1562년 1월 황해도토포사 남치근(南致勤)에게 사로잡혀 죽임을 당하였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560년 11월 24일 임꺽정의 참모였던 도적 서림이 붙잡혔고 임꺽정과 도적떼의 사정을 낱낱이 알고있던 서림은 관군의 앞잡이 노릇을 하여 임꺽정을 추격, 임꺽정의 형 가도치와 김세준 등 임꺽정 일당들이 체포되었습니다.

    임꺽정은 그 후로도 잡히지 않고 1년동안 도피생활을 했으나 1562년 1월 3일 경 황해도 서흥에서 군관 곽순수와 홍언성 등에게 사로잡힌 뒤 확실하지 않은 이유로 사망, 이후 명종은 1월 8일 토벌군들을 치하했고 그 뒤로도 임꺽정의 잔당들은 남아 저항했지만 대부분 처단됩니다.

    임꺽정이 죽었다는 기록은 확연하지만 어떻게 해서 죽었는지 실록에 구체적인 기록은 없습니다.

    담만 이전에 가짜 임꺽정 체포로 여러번 곤란을 겪었던 점, 명종이 임꺽정의 범죄를 역모 행위로 간주해 좌의정과 우의정에게 임꺽정이 잡히면 궁궐에서 심문을 지시했던 점, 임꺽정을 체포 후 1월 13일 내통자 서림의 처형을 논의한 점, 1월 17일 형조에서 도적의 괴수는 이미 처단하였습니다 라고 아뢴 기록 등을 종합해보면 임꺽정은 1월 3일 쯤 체포되자 한양으로 압송되어 1월 8일쯤 임꺽정의 신분을 확인, 1월 13일쯤 일당등과 같이 처형당한것으로 추정하기도 해서 백과사전 등에서는 그저 막연히 임꺽정이 사로잡힌지 15일만에 처형되었다고 써 놓는 경우가 많지만, 그 전 1월9일 사간원이 올린 글에서 임꺽정이 죽었다는 이야기가 언급되니다.

    그 이튿날 1월 10일 임꺽정을 토벌한 남치근의 부대가 한양으로 올라왔기에 명종이 남치근을 만나 토벌보고를 듣기도 전 임꺽정을 급히 처형해야 할 이유도 없었기 떄문에 정말로 처형된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 임꺽정은 도피 생활을 1년 동안 했으나 결국 사로잡힙니다. 이후 임꺽정의 잔당 및 임꺽정은 모두 처단됐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꺽정은 실제 역사적인 인물로서 관군에게 토벌되었습니다. 임꺽정은 조선 시대의 무도가이자 의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농민 출신으로, 조선 중기인 16세기에 활동하였습니다.

    임꺽정은 농민들의 학살과 착취에 항거하기 위해 무장하여 무리를 이뤄 싸움을 벌였습니다. 그의 목표는 불공평한 정치와 사회 체제에 저항하여 백성들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임꺽정의 활동은 당국에게 위협으로 인식되어 군대로부터 수차례로 토벌을 받았습니다.

    임꺽정은 그의 무적의 사냥꾼 이미지로 유명했으며, 대표적인 이야기로는 '관산에서 100인을 쓰러뜨리다'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역사적 사실과 전설 사이에는 혼동과 변형이 있을 수 있으므로, 임꺽정의 모든 이야기가 역사적으로 입증된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