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가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한 독자국 이었다는 증거는 어디서 알수있나요?
동북공정의 화두가 발해 고구려가 중국응 지방자치국이다라고 주장하는데요
그렇다면 발해가 황제 황후라는 칭호를 쓰면서 독자국이었다는 증거사료는 어디서 알수 있나요?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발해가 독자국이었다는 증거는
건국 초기부터 스스로 '고구려왕'이라 칭함
일본에 보낸 외교문서에서 발해왕을 '고려국왕'이라고 지칭
당나라와의 전쟁 후 '발해국왕'이라는 호칭 대신 '발해국황제'라 칭함
문왕 대흠무의 존호가 '황상'으로 기록됨
정효공주묘의 벽화에 '천통 21년'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음(천통은 발해의 독자적인 연호)
등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발해는 황제국이었습니다. 그 근거는 첫째로 연호를 사용하였습니다. 연호는 오늘날에 대부분 사용하는 서력 기원처럼 해를 헤아리는 단위로 중국 중심의 국가는 중국에 대한 사대 의미로 중국 연호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런데 벌해는 연호를 사용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천통(고왕), 인안(무왕), 보력, 대흥(문왕), 중흥(성왕), 정력(강왕), 영덕(정왕), 주작(희왕), 태시(간왕), 건흥(선왕) 등을 사용하였습니다.
또한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하였습니다.문왕 딸인 정효공주비 비문에서는 황상(皇上)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문맥상 이는 당시 왕이었던 문왕을 가리키는 것으로 파악되며 그가 황제적 지위를 누리고 있었음을 알려줍니다. 또한 9대 간왕의 순목황후묘지에도 '순목황후'라는 한자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중대성의 조고사인(詔誥舍人)이란 관직의 '조'는 황제의 명령을 의미합니다. 또한 말갈족으로 발해의 번으로 간주하여 다스렸습니다.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발해는 698년 고구려 유장인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족 등을 받아들여 건국한 국가로 만주와 연해주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습니다. 이후 거란의 침략으로 926년 멸망할 때까지 신라와 함께 남북국 시대를 열었습니다. 발해 멸망 후 발해재건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으며 흥료국에서는 자칭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여러 나라들이 세워졌다가 무너지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