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전쟁은 셀주크튀르크의 성지 순례 박해에 대해 동로마 황제가 로마 교황에 구원을 요청하면서 비롯되었습니다. 1095년 교황 우르반 2세가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십자군을 제창할 때만 하더라도 성지 회복이라는 종교적 의지가 강했습니다. 하지만 십자군에 참여한 국왕, 기사(영주), 상인, 농민들은 종교적 순수성이 아니라 이익에 몰두했습니다.
특히 십자군이 늘 자금난에 시달렸다는 점입니다. 이때 베네치아 같은 해상 도시국가는 “성지까지 가는 길”보다 “배를 어디로 돌릴지”를 더 중요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원정이 이집트나 콘스탄티노플 같은 무역 중심지를 겨냥하는 방향으로 바뀌었습니다. 예를들어 4차 십자군은 베네치아 상인들의 농간에 의해 비잔티움을 점령하고 약탈하는 범죄를 저질렀으며, 결국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에 의해 파면되는 일에 직면하였습니다.
베네치아는 십자군을 통해 동지중해의 항구와 섬, 무역 거점에 대한 영향력을 넓혔고, 유럽-동방 무역의 중개자로서 더 큰 부를 축적했습니다. 결국 십자군 전쟁은 성지를 되찾는 전쟁이면서 동시에, 지중해 해상권을 둘러싼 경제 전쟁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