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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은 우리나라 예술가 인가요??

안녕하세요.

오만원 지페의 주인공

신사임당 그녀는 예술가 인가요?

어떤 예술작품이 대표적으로 유명한가요?

하나도 아는게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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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사임당(1504~1551)

    조선전기 「자리도」·「초충도」·「노안도」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입니다.

    이이의 어머니로서 시·그림·글씨에 능한 예술가였다. 그의 어머니는 친정의 아들잡이로서 친정에 살면서 비교적 자유롭게 자녀교육을 할 수 있었고, 신사임당도 남편의 외조 속에 천부적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생동하는 듯한 섬세한 사실화, 고상한 정신·기백을 드러내는 글씨는 모두가 탐낼 정도로 뛰어났다고 한다. 유교적 여성상에 만족하지 않고 독립된 인간으로서의 삶을 개척한 여성입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사임당은 조선전기 「자리도」·「초충도」·「노안도」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이자 서예가 이자 시인 입니다. 1504년(연산군 10)에 태어나 1551년(명종 6)에 사망했는데 이이의 어머니로서 시·그림·글씨에 능했고 무엇 보다도 여성들의 사회적 참여가 힘들었던 시기에 이이와 같은 자식을 잘 길러내고 본인 스스로도 여류 예술가로서 큰 역할을 했다는 자체가 대단한 위인 이라고 할수 있는 것 입니다. 그래서 5만원 권 지폐에도 그 얼굴을 올린 것 이구요.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초기에 활동한 여성 서화가이다. 호는 사임당(思任堂; 師姙堂) · 시임당(媤姙堂) · 임사재(姙師齋)이고,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강원도 강릉 북평촌에서 신명화(申命和)와 용인이씨(龍仁李氏) 사이에서 5자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부친은 41세에 진사에 올랐으나 조광조의 지치주의(至治主義) 실현에 뜻을 같이해 1519년 기묘사화 이후에는 관계(官界)를 떠나 학문에 뜻을 두었다. 무남독녀로 외조부의 사랑을 독차지한 모친의 영향으로 학문에 상당한 조예를 이루었다.


    1522년 덕수이씨(德水李氏) 이원수(李元秀)와 결혼해 4남 3녀의 7남매를 낳았다.


    부군인 이원수는 50세가 되어서야 종5품 벼슬인 수운판관(水運判官)을 시작으로 내섬시 · 종부시 · 주부(主簿)에 이어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을 역임하였다.


    신사임당은 엄격함과 자애로움, 그리고 당당함을 겸비한 주부로서 집안 대소사에 소홀함이 없었다.


    남편은 서울에서 홀로된 모친 홍씨(洪氏)를, 신사임당은 강릉에서 친정어머니를 모셨기에 이들 부부는 근 20년이나 떨어져 살았다.


    셋째 아들이 조선 성리학의 거유 이이(李珥)이다. 맏딸 매창(梅窓)과 넷째 아들로 막내인 이우(李瑀)가 그림으로 이름을 남겼다.


    신씨는 현모양처(賢母良妻)의 표상이자 교육의 사표(師表)이며 변함없는 존경의 대상으로 알려졌는데, 여러 명사제현들의 문헌에 서화가로서의 명성이 거론되었다.


    전래작이 많음은 서화의 전래가 드문 조선 전기로서는 의외의 사항이라 하겠으나 이들 대부분은 전칭작을 면하기 어렵다. 신사임당은 산수 · 영모 · 묵포도 · 초충 등 다양한 소재의 그림뿐 아니라 시문에도 능했으며 글씨도 잘 썼다.


    7세 때부터 조선 초 최대 거장으로 근 백년 앞선 안견(安堅)의 그림을 보고 <산수도>를 그렸다는 아들 율곡 이이의 증언과 산수화에 뛰어났다는 문헌기록이 있으나 이 화목의 전래작은 몹시 드물다.


    산수화로는 율곡 이이 종손가에 있는 <산수도> 8폭과 <금강산도>, 그리고 1985년 문화재관리국으로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 이관된 병풍에 있는 산수도 2점 등 11점이 알려져 있다.


    특히 후자인 산수도 병풍은 화면에 인장은 없으나 수묵 위주이면서 두 폭 모두 나무 주변에 약간 담황(淡黃)을 칠한 흔적이 있다. 화면의 무게 중심을 각기 좌우 상단에 두고 있으며, 각기 좌우에 3행씩 당나라 시인 맹호연(孟浩然)과 이백(李白)의 5언시를 적었다.


    두 폭은 일견 중천(中天)에 만월(滿月)이 있는 야경으로 보이지만, 한 폭은 해질 무렵의 달이며 다른 폭은 저물 무렵의 지는 해임이 이들 시로 해서 비로소 확인되니 둘 다 야경은 아니다. 시 내용에 맞게 서정적인 시적 정취가 짙은 문인화 영역을 잘 보여준다.


    이 그림 두 폭을 연결하면 원경에서 시작해 근경으로, 그리고 다시 원경으로 마무리되는 남송대 이후 흔히 볼 수 있는 일반화된 두루마리의 구도를 보여준다.


    바위와 토파의 묘사에서 보이는 강한 묵선과 흑백대조, 그리고 고목의 줄기나 가지에서 보이는 거친 듯 짧은 필선에서 조선시대 중기를 풍미한 절파계(浙派系) 화풍을 확인할 수 있다.

    전래작으로는 초충도가 많은데, 집에서 재배하는 양귀비 · 맨드라미 · 꽈리 등 풀꽃, 가지 · 오이 · 수박 등 채소, 벌 · 나비 · 매미 · 잠자리 · 개미 · 쇠똥구리 · 메뚜기 등 곤충, 도마뱀 · 들쥐 · 개구리 등이 등장한다.


    영모화는 조선 중기 화단에 크게 유행한 이른바 수묵 위주의 사계영모도(四季翎毛圖) 계열이어서 유행의 선구적인 면을 보여준다.


    이화여대 박물관 소장 《월림세전유묵(月林世傳遺墨)》에 있는 두 <수금도(水禽圖)>나 율곡 종가 소장으로 알려진 <물새>는 물가에 새 한 마리만을 등장시킨 소품들로 사계영모의 하경에 주로 등장되는 것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경윤의 《낙파연주첩(駱破聯珠帖)》 내에도 들어 있는 친숙하고 흔한 소재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노연도(鷺蓮圖)>, <노안도(蘆雁圖)>, <요안구압도(蓼雁鳩鴨圖)> 및 개인 소장의 <원앙도(鴛鴦圖)> 등이 알려져 있다. 이들 모두 소폭들로, 수금(水禽)을 그렸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설채와 수묵 두 부류인 점에서 구별된다.


    묵포도는 조선에서 이 소재의 정형을 이룩한 황집중(黃執中)과 양식상 공통점과 친연성이 있고 18세기 대수장가 김광국이 모은 《석농화원(石農畵苑)》 화첩에 수록된 작품과 이병연(李秉淵)의 제시가 첨부된 간송미술관 · 삼성미술관리움에 있는 2점이 대표적이다.


    간송미술관 <신씨어하도(申氏魚鰕圖)> 또는 <황쏘가리> 혹은 좌측에 2행에 걸친 제발로 <자리도(紫鯉圖)>로 불리는 어해도는 조선 후기나 말기의 이 소재와는 구별을 보이며 송(宋) 이후의 <조어도(藻魚圖)> 계열이다.


    15~16세기 분청사기에 철화로 그리거나 인화문(印花文)으로 나타낸 쏘가리의 예가 없는 바는 아니나 어해도의 흐름에서도 앞부분을 점한다.


    신사임당의 유작은 수량도 많고 소재도 다양해서 서화의 전래가 드문 조선 전기로서는 예외적인 경우이다.


    특히 초충도와 묵포도 분야에서 고유색 짙은 화풍의 형성과 창출로 그 역할이 두드러진다. 이에 16세기 전반의 화단에 있어서 간과할 수 없는 분명한 위상을 지니며 후대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였다.

    출처 : 한국 역대 서화가 사전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임당 신씨는 조선 시대 중기의 문인이자

    유학자, 화가, 작가,시인입니다.

    율곡 이이, 화가 이매창의 어머니며,

    「자리도」·「초충도」·「노안도」 등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신사임당은 예술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사임당은 어려서부터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7살 때부터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그녀의 그림은 자연을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데 뛰어났으며, 그 시대의 화가들로부터도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신사임당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초충도 : 풀과 벌레를 그린 그림으로, 닭이 진짜 벌레인 줄 알고 쪼아 먹으려 했다는 일화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자리도 : 자리를 짜는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신사임당의 섬세한 필치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도원도 : 도원경의 경치를 그린 그림으로, 신사임당의 이상적인 세계관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외에도 신사임당은 시와 글씨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그녀의 시와 글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 추천 부탁드려요 ~좋은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