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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람한스컹크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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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경왕후는 왜 그리도 양녕대군의 페위에 슬퍼했나요?

원경왕후는 자신의 첫째 아들인 양녕대군이 폐위되고 충녕대군이 세자가 되자 굉장히 슬퍼했다고하며 세종이 즉위할때도 슬퍼했다고하는데 유독 원경왕후가 모든 자식중 양녕대군을 더 사랑하고 그의 폐위에 슬퍼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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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양녕대군은 태종과 원경왕후의 맡아들로 왕실의 적장자입니다. 태종 4년 11세의 나이에 양녕은 세자로 책봉되었습니다. 그런데 세자 양녕대군은 공부보다는 매사냥에 취미가 있었고, 몰래 궁궐을 빠져나와 사냥을 하거나 술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여성 편력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여자 문제로 발생하면 양녕대군은 궁중에 많은 스캔들을 일으켰고 이는 세자 폐위의 요인이 되었습니다.

    결국 태종 18년(1418) 결국 양녕을 폐위하고 충녕대군을 세자로 삼았다는 교서를 내렸습니다. 당시 원경왕후는 양녕대군의 폐세자 결정에 반대했고, 이후 슬퍼했습니다. 그 이유는 맏아들이 어떤 형태로든 죽음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양녕은 18세 때 태종과 결혼 한 10년간 낳은 3남3녀 중 아들 3명이 죽고 난 다음에 태어나 살아난 아들이기 때문에 양녕에 대한 애뜻한 마음이 컸습니다.

    원경왕후는 이에 장자상속제에 따라 양녕의 아들인 원손을 후계로 책봉하려 하였으나 성사되지 못합니다. 양녕을 멀리 보내라 하자 눈물을 흘리며 근처에 보내라 하여서 결국 경기도 광주로 보냈습니다. 세종의 즉위 이후에도 형을 목숨만을 제발 부지시켜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무래도 당시 장자 승계가 원칙인 등

    양녕대군이 첫째인데도 폐위되는 등 하였기에

    이에 따라서 그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