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래의 난(1811)에 세도 정치와 평안도에대한 지역 차별에 불만으로 일어나 농민 반란입니다. 몰락 양반 홍경래는 우군칙, 김창시 등과 함께 이 지역의 농민, 상인, 광산노동자들을 선동하여 봉기하였습니다. 결국 관군에 의해 진압되어 2983명이 체포되고, 어린 아이들을 제외하고 1917명이 처형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가혹하게 처형한 이유는 조선시대 가장 중범죄로 강상죄와 함께 반역죄는 엄하게 처벌하였습니다. 즉 홍경래의 난에 가담자들은 모두 반역자로 엄하게 처벌하였습니다.
1811년 평안북도에서 홍경래가 지방 차별과 조정의 부패에 항거하여 일으킨 농민전쟁이었습니다. 정부군은 땅굴을 파고 들어가 화약으로 성의 아래를 폭발시키고 성내로 돌입하여 함락시키니 5월 29일로 농성한지 100여일 거병한지 5개월 만이었습니다. 이때 홍경래는 총에 맞아 죽고 우군칙 홍총각 등 다수가 포로가 되어 한양으로 압송된 후 음력 5월에 참형되었습니다. 이때 2983명이 체포되어 여자 842명과 열살 이하의 남자 소년 224명 제외한 1917명 전원 처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