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봉수대에는 사람이 상주했나요?
조선시대 통신 수단인 봉수대는 위급한 상황이 생겼을 때 한양(왕)에 빠르게 알리는 수단이었는데요. 그러면 지금의 공무원 또는 군인들처럼 봉수대에 상주사는 사람이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149년(고려 의종 3)에는 서북 병마사 조진약의 상소에 의해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로써 신호를 전하게 하고,
평상시의 1회에서부터 그 위급함에 따라 4회까지 봉수를 피우게 하는 봉수식이 정해졌으며, 각 봉수에는
방정(防正) 2명과 백정(白丁) 20명씩을 두어 봉수를 운영하여 제도적으로
봉수대가 운영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봉수군은 봉수대에 상주근무했습니다.
봉수대에서는 5~10명정도가 5,10일마다 교대 근무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가장 남단의 동래(오늘날 부산) 봉수대에서 봉수를 올리면 서울 남산 봉수대까지 한나절이면 도달하였다 하니, 당시로는 정말 신속한 전달 체계이였다고 합니다. 이 봉수대를 맡아보는 군인을 봉수군이라 하였는데, 훗날 음가가 바뀌어 봉수꾼이라 불렀던 거 같습니다. 조선 시대 군역은 16세 이상의 남자들의 의무였으니 마치 우리 군인 들이 경계 근무를 서듯이 봉수대 근무도 번갈아 가면서 섰던 것으로 보입니다.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 봉수대에는 봉졸이라는 병사들이 근무했습니다. 봉졸은 3인 1조로 무기를 휴대하고 밤낮으로 정찰을 돌았으며,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봉수를 피워 소식을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