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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한불독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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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봉수대에는 사람이 상주했나요?

조선시대 통신 수단인 봉수대는 위급한 상황이 생겼을 때 한양(왕)에 빠르게 알리는 수단이었는데요. 그러면 지금의 공무원 또는 군인들처럼 봉수대에 상주사는 사람이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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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개의 답변이 있어요!
    • 든든한소쩍새224
      든든한소쩍새224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149년(고려 의종 3)에는 서북 병마사 조진약의 상소에 의해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로써 신호를 전하게 하고,

      평상시의 1회에서부터 그 위급함에 따라 4회까지 봉수를 피우게 하는 봉수식이 정해졌으며, 각 봉수에는

      방정(防正) 2명과 백정(白丁) 20명씩을 두어 봉수를 운영하여 제도적으로

      봉수대가 운영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봉수군은 봉수대에 상주근무했습니다.

      봉수대에서는 5~10명정도가 5,10일마다 교대 근무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가장 남단의 동래(오늘날 부산) 봉수대에서 봉수를 올리면 서울 남산 봉수대까지 한나절이면 도달하였다 하니, 당시로는 정말 신속한 전달 체계이였다고 합니다. 이 봉수대를 맡아보는 군인을 봉수군이라 하였는데, 훗날 음가가 바뀌어 봉수꾼이라 불렀던 거 같습니다. 조선 시대 군역은 16세 이상의 남자들의 의무였으니 마치 우리 군인 들이 경계 근무를 서듯이 봉수대 근무도 번갈아 가면서 섰던 것으로 보입니다.

    •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 봉수대에는 봉졸이라는 병사들이 근무했습니다. 봉졸은 3인 1조로 무기를 휴대하고 밤낮으로 정찰을 돌았으며,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봉수를 피워 소식을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