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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일제시대의 쇠말뚝은 실존하는 것인가요?

어렸을 때 이런 말을 많이 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한번도 실물이 발견된 적은 없고 군대에서 쓰는 말뚝을 오인했거나 등의 에피소드만 있네요.

쇠말뚝이 정말 있긴 있나요? 있다면 어디에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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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일제 쇠말뚝설은 이른바 일본 육군 장군 야마시타 도모유키 전설에서 시작되었다. 즉 일본 패망 후 전범재판에서 일본 육군대장 야마시타 도모유키의 영어 통역관이 '신세우'라는 한국인이었는데, 야마시타가 조선에서 근무할 당시 조선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해 쇠말뚝 수백 개를 박았다는 비밀을 형 집행 직전 신세우에게 털어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 언론에서 당시 재판기록과 문서들을 조사해본 결과 조선인 통역관은 없었고 쇠말뚝 어쩌고 하는 얘기도 전범재판 과정 내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고 드러났다.

      국내에서 유일한 풍수지리 관련 유튜브 채널에서 해당 내용을 다룬 적이 있다.

      요약하면 풍수지리적으로는 쇠말뚝이 박힌 위치가 대한민국 기가 뭉친 혈처가 아닌 엉뚱한 바위이므로, 일제강점기의 토지조사사업에서 사용된 삼각점일 확률이 높다고 보고있다. 여기에 당시 상당한 반일감정과 풍수지리가 실존하던 시기에 이를 보고 분개한 농민들에 의해 '일제가 조선의 정기를 끊으려 한다'고 구전되었을 수 있다는 소견을 밝혔다.

      출처: 나무위키 쇠말뚝

    • 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천의 원적산 천덕봉에서 일제강점기때 박힌 것으로 추정되는 쇠말뚝과 칼날이 발견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제시대에는 일본의 식민지로서 우리 나라에서 다양한 압제와 착취가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쇠말뚝(鐵樁)이라는 것입니다. 쇠말뚝은 일제시대에 쓰인 징조(警署)나 경찰서, 군사시설 등의 건물 주변에 설치된 길이 약 1.5m에서 3m 정도의 둥근 철제 기둥으로, 이를 통해 건물 주변을 둘러싸며, 통제와 감시를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현재는 일제시대의 압제와 착취의 상징으로 남아 있으며, 일부는 역사유적으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 종로구의 경찰박물관에는 일제시대의 경찰청사를 복원한 것과 함께 쇠말뚝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경남 진주시의 진주성에서는 일제시대에 설치된 쇠말뚝을 전시하고 있으며, 이 외에도 전국적으로 다양한 곳에서 쇠말뚝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쇠말뚝은 일제시대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그 역사적인 배경과 함께 다양한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이를 전시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래 뜻은 쇠로 된 말뚝 입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한반도의 정기를 끊고자 쇠말뚝을 산간벽지 이곳 저곳에 꽂아뒀다는 도시 전설을 말합니다.

      일제 쇠말뚝은 이른바 일본 육군이군 야마가타 도모유키 전설에서 시작 되었습니다. 즉, 일본에만 후 전범재판에서 일본 육군대장 야마시타 도모유키의 영어 통역관이 ‘신세우’ 라는 한국인 이었는데, 야마시타가 조선에서 근무할 당시 조선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해 쇠말뚝 수백 개를 박았다는 비밀을 형 집행 직전 신세우에게 털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 언론에서 당시 재판기록과 문서를 조사해 본 결과 조선인 통역관은 없었고, 쇠말뚝에 관련된 이야기 역시도 전범재판 과정 내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쇠말뚝은 일제강점기의 토지조사 사업에 사용된 감각적인 확률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즉, 쇠말뚝을 박아서 지맥을 끊는다는 발상은 한자 문화권의 전근대적 사상인 풍수지리에 기반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