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라는 인물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바로크 양식을 만들었다고 하는 카라바조는 이탈리아 내에서는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만큼 위상이 높다고 하는데요.
사실 위상에 비해 많이 안알려져 있는 것 같은데 어떤 인물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본명은 미켈란젤로 메리시 이며 베르가모 근교의 카라바조 출생으로 초기 바로크의 대표적인 화가입니다.
1584년 밀라노의 화가 시모네 페테르차노에게 사사하고 그 후 로마로 가서 처음 빈곤과 병고로 비참한 생활을 하나 뒤에 추기경 델 몬테의 후원으로 화가로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 초기에는 정물과 초상을 치밀한 사실 기법으로 묘사해 바로크미술양식을 확립했는데 우피치미술관의 바쿠스, 루브르미술관의 여자 점쟁이, 성모의 죽음 , 로마에있는 산루이지 데이 프란체시성당의 성마태오의 순교, 바티칸궁전에 있는 그리스도의 죽음, 로사리오의 성모, 나자로의 부활 등 성모와 성자를 모델로 로마에 사는 빈민의 모습을 등장시킨 그림들을 보면 그는 빛과 그림자의 날카로운 대비를 기교적으로 구사하고 형상을 힘차게 조소적으로 묘사함으로 근대사실주의의 길을 개척했습니다.
금색을 바탕으로 밝은 색의 조화로써 구성된 초기 작품에서 격하게 억제된 빛으로 조명된 만년의 음울한 작품에 이르기까지 그의 예술은 언제나 빛과 형상에 대한 근본원칙을 확립하고 있으며 이탈리아적인 조형전통을 부활시킴과 동시에 프란스 할스와 렘브란트 판 레ㅣㄴ, 초기의 디에고 벨라스케스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향을 주었고 17세기 유럽회화의 선구자로 평가됩니다.
그의 화풍은 제자인 에스파냐의 후세페 데 리베라를 통해 살바토르 로자에게 계승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탈리아의 화가. 철저한 사실과 진지한 신앙에 의해 후기 마니에리슴에서 바로크로의 전기를 개척한 거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세 무렵 풍속화와 정물화를 그렸고, 바로크 회화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성 요한의 참수’는 그의 대작으로 손꼽힙니다.
카라바조의 대표작은 다음과 같습니다.
-성 마태 전(1597 추정년 ~ 1602년)
-그리스도의 매장(1602년 ~ 1604년)
-성모의 죽음(1606년)
-성 요한의 참수(1608년)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는 당대의 가장 혁신적인 화가로 평가되며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마침표를 찍고 17세기 바로크 시대를 연 화가인 동시에 그는 가톨릭교회가 사람들에게 이상적인 기독교적 환상을 심어주기 위해 추구하는 화풍을 버리고 인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기독교의 종교적인 화품을 거부 한 이단아 라고 할수 있는데 카라바조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의미를 잘 이해하며 이를 작품에서 매우 섬세하게 표현하였으므로 그의 작품에서는 종종 극적인 긴장감이 느껴지곤 하는데 로마 가톨릭 교회는 개신교의 등장으로 흔들리는 교인 들의 마음을 붙잡아야 했으므로 환상적이고 감동적인 성화로 그들을 감화시키고자 하지만 세속적이고 현실적이며 인간 본연의 심리를 꿰뚫고 이를 작품에 녹여내려 했던 카라바조는 가톨릭 교회의 눈총을 받게 되었고 그는 심지어 16세기 뒷골목을 오가는 불량배, 거지, 매춘부 등을 그림 속에 끌어들여 그들을 예수로, 성자로, 막달라 마리아로 둔갑시켰다고 합니다. 그가 그린 그림에는 그 어디에도 인간을 초월한 신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탈리아의 화가로, 밀라노 부근 카라바조에서 출생하여 치비타베키아 근교 폴트 엘코레에서 사망했다. 밀라노에서 페테르차노(Simone Peterzano)에게서 배웠고, 20세 무렵 로마로가 풍속화와 정물화를 그렸다. 『성 마태 전』(1597?~1602. 로마, 산 루이지 디 프란체에지 성당)으로 인정을 받아 『그리스도의 매장』(1602~04, 바티칸 미술관), 『성모의 죽음』(1606, 루브르 미술관) 등의 제단화를 차례로 제작했다. 1606년 5월 29일 친구를 죽이고 로마를 떠나 1607년 나폴리로 가서 나폴리 파의 테네브로지(⇒테네브리즘)의 기초를 쌓았다. 1608년 몰타 섬으로 건너가 대작 『성 요한의 참수』 (바르레타, 산조반니 대성당)를 그렸으며 이어서 시칠리아 섬의 시라쿠사, 메시나, 팔레르모에 명암 대조가 강한 종교적인 후기 작품을 남겼다. 로마로 돌아가는 도중 말라리아에 걸려 사망했다. 철저한 사실과 진지한 신앙에 의해 후기 마니에리슴에서 바로크로의 전기를 개척한 거장(巨匠)이며, 집중적인 조명 효과는 새로운 정신 표현의 수단으로서 바로크 회화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출처 : 미술대사전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본명 미켈란젤로 메리시(Michelangelo Merisi). 베르가모 근교의 카라바조 출생으로, 초기 바로크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1584년 밀라노의 화가 시모네 페테르차노에게 사사하고 그 후 로마로 가서 처음에는 빈곤과 병고로 비참한 생활을 하였으나, 뒤에 추기경 델 몬테의 후원으로 화가로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정물과 초상을 치밀한 사실기법으로 묘사하여 바로크미술양식을 확립하였는데, 우피치미술관의 《바쿠스》, 루브르미술관의 《여자 점쟁이》 《성모의 죽음》, 로마에 있는 산루이지 데이 프란체시성당의 《성마태오의 순교》, 바티칸궁전에 있는 《그리스도의 죽음》 《로사리오의 성모》 《나자로의 부활》 등 성모와 성자를 모델로 로마에 사는 빈민의 모습을 등장시킨 그림들을 보면 그는 빛과 그림자의 날카로운 대비를 기교적으로 구사하고, 형상을 힘차게 조소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근대사실주의의 길을 개척하였다.
금색을 바탕으로 밝은 색의 조화로써 구성된 초기 작품에서 격하게 억제된 빛으로 조명된 만년의 음울한 작품에 이르기까지, 그의 예술은 언제나 빛과 형상에 대한 근본원칙을 확립하고 있다. 이탈리아적인 조형전통을 부활시킴과 동시에 프란스 할스와 렘브란트 판 레인, 그리고 초기의 디에고 벨라스케스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향을 주었고, 17세기 유럽회화의 선구자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화풍은 제자인 에스파냐의 후세페 데 리베라를 통해 살바토르 로자에게 계승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카라바조 [Michelangelo da Caravaggio]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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