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4년 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하면서 십자군에 대한 절망과 실망감이 컸습니다. 그런데, 당시 가난한 농민층 중심으로 '죄없는 아이들만이 기적으로 바다를 건너 성지를 되찾을 수 있다'는 종교적 확신이 확산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종교적 열광으로 프랑스와 독일 등지에서 수만명의 소년, 소녀가 무장 없이 지중해 항구로 행진했습니다.
프랑스의 스테판과 독일의 니콜라스가 이끄는 무리는 마르세유와 제노바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바다가 갈라지지 않았고, 상인들에게 속아 북아프리카 노예 시장으로 팔리거나 폭풍으로 난파되어 많은 어린이가 익사, 질병으로 사망하는 결과를 초랬습니다.
이 사건은 성지 회복에 대한 종교적 광신과 사회적 불안이 결합되어 일어난 비극이며, 대부분 성지에 도달하지 못한 채 흩어지거나 목숨을 잃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