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조선시대 노비는 왜 조선전기에 제일 많앗던 것인지 그 이유가 알고 싶습니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조선시대 초기에는 나라도 잘 정립되고 백성들도 잘 살던 평안한 시기로 인식이 되기 때문에 노비가 제일 적을것으로 생각이 되는데요.
오히려 조선말기 나라가 점차 핍박해지고 혼란이 심했던 이 시기에 노비가 제일 많았을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왜 조선전기에 노비가 제일 많았던것인지 그 배경이 알고 싶습니다
1개의 답변이 있어요!
조선 초기 15세기 양반 비율은 1~2%로 극소수이고, 반대로 노비의 비율은 30~40%였습니다.
학계에서 조선 인구를 1000만명으로 정도로 봤을 때 대략 400만명이 노비인 것으로 추산합니다. 그 이유는 양천교혼을 하면 '일천즉천', 즉 부모 중에 한명만 노비라도 그 자녀가 노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려시대에는 양촌교혼이 금기했으나 조선 시대가 되면서 금기가 느슨하게 되고, 오히려 노비를 늘리기 위해 적극적이었습니다.
국왕의 입장에서 상민을 늘려 국가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는데, 대표적으로 태종은 종부를 시행하여 양인남성과 여성 노비 사이에 태어난 자식을 양인 자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노비가 줄자 양반들의 반발로 세종 때 종부법이 폐지되었습니다. 그리고 <경국대전>에 의해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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