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의 2차 침입은 요의 성종이 4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 왔으나 홍화진에서 양규장군에게 막혀 진군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요의 성종은 20만 정예병으로 개경으로 곧장 진격합니다. 남하하는 거란군은 통주에서 강조가 이끈 고려군을 대파하였습니다. 그러나 거란이 빼앗은 성은 곽주성 하나였습니다. 강조가 이끈 고려군의 패배로 조정은 항복여부를 놓고 찬반이 팽팽하게 대립합니다. 이때 강감찬은 작전상 후퇴를 언급하며 몽진을 약속하고 일단 피신할 것을 권유합니다. 아직 거란이 점령한 성이 없기 때문에 고려군이 아직 건재하다는 것이고 양주징군이 곽주성을 탈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현종 등은 피신을 떠나게 됩니다.
양규는 흥화진으로 부터 700명의 결사대 선발하여 곽주성을 공격하였습니다. 결사대는 곽주성의 구조와 지형을 훤히 알고 있었습니다. 고려 결사대의 습격으로 성안의 6000거란은 모조리 목이 베었습니다. 그런데 1010년 12월 16일 당시 곽주성에 유성이 떨어졌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유성은 병사들의 사기와 인과관계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상과 같은 상황을 종합해 보면, 양규는 700명의 정예병, 지형 숙지, 유성으로 인한 병사들 사기 등이 곽주 탈환에 반영될 것으로 추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