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양반이라고 하더라도 99간을 넘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례적인 사례도 있는데 강릉의 선교장입니다. 선교장의 주인은 효령대군 11세 후손인 이내손으로 그의 아들 이시춘과 손자 이후를 거쳐 대대로 이어가며 관동 지방의 만석꾼으로 성장합니다. 선교장은 102칸 큐모의 살림집으로 하인들의 거처까지 합치면 300칸에 달합니다. 이는 자급자족적 경제 시스템을 갖춘 자원 형태의 집이었습니다. 선교장은 단순한 주택이 아니라 관동팔경을 유람하던 고위층과 선비들을 접대하기 위해 다수의 방을 조성한 것입니다. 일반적인 대저택과 달리 특별한 목적에 따라 증축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