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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

조선시대에도 현상수배와 같은 것이 있었나요?

드라마를 보면 마을에 포스터마냥 얼굴을 그려 붙여놓는 장면을 볼수있는데요

주로 이러한 사람들은 어떤 죄명을 받아 얼굴을 드러내게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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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죄인의 얼굴과 죄목을 적어 붙였는데 요즘으로치면 현상수배범 포스터를 용모파기라고 불렀다고합니다

  •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 용모파기라고 생김새와 특징을 기록한 것을 길거리 곳곳에 붙이고 했습니다. 고보자국, 흉터 같은 특징을 글로 적었다고 보시면 될거 같습니다. 재력가들이 군역의무를 피해서 도망친것을 잡으려고 붙인 것도 있었고, 살인범을 잡으려고도 용파를 붙였습니다. 용모파기는 줄여서 용파라고도 불렀습니다.

    규장각에 살인범의 인상착의를 기록한 용파 관련 자료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현상 수배를 방문이라고 했습니다. 이 방문은 군사작전과 도적을 잡는데 긴요하게 활용되었는데 현대식으로 말한다면, ‘현상수배범’벽보 정도 될 것입니다. 세조 5년에 ( 1459년 4월 27일) “저자의 미곡을 겁탈한 도적을 잡는 방문을 내걸다”라는 실록 기사를 보면, 밤에 도적이 저자 [市]에 들어가서 사람들이 한데다 쌓아 둔 미곡 (米穀)을 겁탈 (劫奪)했으므로, 성문 (城門)을 닫고 수색하여 잡도록 하고, 방문 (榜文)을 내걸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도적이나 기타 범죄자들을 찾는데 이렇게 방문을 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