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용모파기라고 생김새와 특징을 기록한 것을 길거리 곳곳에 붙이고 했습니다. 고보자국, 흉터 같은 특징을 글로 적었다고 보시면 될거 같습니다. 재력가들이 군역의무를 피해서 도망친것을 잡으려고 붙인 것도 있었고, 살인범을 잡으려고도 용파를 붙였습니다. 용모파기는 줄여서 용파라고도 불렀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현상 수배를 방문이라고 했습니다. 이 방문은 군사작전과 도적을 잡는데 긴요하게 활용되었는데 현대식으로 말한다면, ‘현상수배범’벽보 정도 될 것입니다. 세조 5년에 ( 1459년 4월 27일) “저자의 미곡을 겁탈한 도적을 잡는 방문을 내걸다”라는 실록 기사를 보면, 밤에 도적이 저자 [市]에 들어가서 사람들이 한데다 쌓아 둔 미곡 (米穀)을 겁탈 (劫奪)했으므로, 성문 (城門)을 닫고 수색하여 잡도록 하고, 방문 (榜文)을 내걸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도적이나 기타 범죄자들을 찾는데 이렇게 방문을 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