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은 1241년 제 3차 여몽전쟁 뒤 고려가 몽골에 항복할 때 일어났습니다. 몽골은 태자의 입조를 요구했는데, 고려는 평범한 왕족인 영녕공 왕준을 왕자라고 속이고 보낸 것입니다. 10년뒤 몽골이 이를 알았으나 별다른 처벌 없이 넘어간 사건입니다.
그 이유는 고려가 왕준에 대해 '친아들'이라고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몽골측 반응도 왕준이 원만한 성격과 몽골 황제의 신임 덕분에 넘어갔습니다.
왕준은 이후 몽골에서 몽골 황녀와 혼인하고, 안무고려군민총관 같은 직책을 맡아 몽골과 고려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몽골 귀족화 경향이 강해지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