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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늉한사발
숭늉한사발23.04.16

쌍기는 왜 고려에 귀화했나요?

고려 광종 때 광종의 개혁 정책에 브레인으로 활약한 쌍기는 중국에서 귀화한 인물로 압니다. 쌍기가 고려에 귀화한 이유와 계기가 궁급합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4.16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전기 후주에서 귀화해 과거제도 설치를 건의한 문신. 귀화인입니다.

    본래 후주인(後周人)으로 산둥지방 칭저우(靑州)의 수령이던 쌍철(雙哲)의 아들이다. 후주에서 벼슬해 산둥반도[山東半島] 등저우[登州]에 있는 무승군(武勝軍)의 절도순관(節度巡官)·장사랑(將仕郎)·시대리평사(試大理評事)를 지냈습니다.

    956년(광종 7) 후주의 봉책사(封冊使) 설문우(薛文遇)를 따라 고려에 왔다가 병이 나 머물게 되었습니다. 병이 나은 뒤 광종(光宗)의 눈에 들어 후주로부터 허락을 받은 뒤 원보(元甫)·한림학사(翰林學士)에 임명되었다. 958년 과거제도의 설치를 건의하였습니다.

    959년에는 쌍철이 고려에 와서 좌승(佐丞)이 되었습니다. 아들 쌍기가 광종의 총애를 받는다는 말을 듣고 고려의 사신 왕긍(王兢)을 따라와 관직을 받은 것입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쌍기 [雙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후주의 사신단으로 고려에 왔던 쌍기는 병이 나서 사신단과 함께 돌아가지 못했고 그대로 고려에 귀화했습니다.

    후주의 일개 관리에서 고려왕의 총애를 받는 신하가 되었으니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로 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고려시대 후주사람인 쌍기는 우연히 고려에 머물던 가운데 광종에게 발탁되어 귀화해 여러가지 왕권강화를 위한 제도 개혁을 추진한 인물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듯 이 시기 10세기초는 중국은 흔히 <5대 10국>이라는 혼란기였다는 점, 이러한 난세에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고자하려는 욕구의 분출, 혹은 혼란기속에서의 권력투쟁의 패배 등이 고려로의 귀화한 요인이 아닌가 추정되어집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쌍기는 후주의 사신단으로 고려에 왔다가 병이 나서 사신단과 함께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고려에 귀화했습니다.

    병이 어떤 병이었는지 기록에 따로 나와있지 않지만 애초에 꾀병이었고 광종이 직접 그를 영입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관련자료에 따르면 쌍기가 고려에 귀화를 한 것은 고려의 광종이 필요성을 찾아 그를 부르는 운명과 쌍기가 중국의 혼란을 예감하고 차라리 귀화하여 고려 왕조를 돕는 일을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