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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자매아빠
윤자매아빠23.06.01

검도는 우리나라 전통무술인가요?

우리나라에는 검도 도장들이 많은데 이 검도는 우리나라 전통 무예 무술인가요? 아니면 다른 나라에서 시작되어서 우리나라로 들어온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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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6.01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검도(劍道)는 일본의 무도로, 메이지 시대 여러 일본 고류 검술 유파가 모여 검술 수련 방법 중 하나인 격검(撃劍)을 경기화하고 다양한 검술 체계를 규격화한 것을 유래로 한다.


    검도의 수련은 대련과 카타(型)로 나뉘는데, 대련의 경우 호구를 입고 죽도로 상대의 타돌 부위[1]를 기검체일치(気剣体一致)[2]와 잔심(殘心)[3]이 뒤따르도록 올바르게 타격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카타의 경우 일본검도형[4]을 수련하는데, 대도의 형(大刀の形) 1~7본과 소태도의 형(小太刀の形) 1~3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개 목검이 사용된다.


    종주국인 일본 현지에서는 학생 스포츠, 생활체육, 실업체육으로 널리 보급되어 일본에만 수련자가 약 177만 명이라고 추정되며[5], 일본 밖으로는 한국, 대만 등 역사적으로 검도 수련의 전통이 긴 국가들이나 미국, 캐나다, 브라질 등 일본계 이민자 후손들이 많은 국가들에서 널리 수련된다.


    출처: 나무위키 검도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본의 체계화된 현대 검도를 받아들여서 나름대로 발전시킨 형태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검법이 없지는 않았지만, 전수되지 않고 명맥이 끊어지고 오직 문헌에만 남아있죠.

    우리 나라에서 전승무예는 사부에서 제자로 이어져 전승된 무예는 택견과 불가에서 전해지는 불무도 뿐입니다.

    조선시대에 무인을 천시하고 더우기 일제강점기에 완전히 맥이 끊어졌죠.

    지금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는 무예는 광복이후에 창안된 무예거나 외국의 무술을 변형하고 우리의 것을 가미한 무술, 또는 문헌을 보고 새로 연구해서 복원한 무술입니다.

    태권도 마져도 우리나라 고유 무술이긴 하지만 해방 뒤에 고안된 창안 무술이고, 고대로부터 물려온 무술은 아닙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검도는 일본의 무도로 메이시 시대 여러 일본 고류 검술 유파가 모여 검술 수련 방법 중 하나인 격검을 경기화하고 다양한 검술체계를 규격화한것을 유래로 합니다.

    19세기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가노 지고로 박사가 기존의 유술을 청소년 체육 교육 수단으로 정립해 유도를 창시, 이때부터 힝본 학교는 유도를 비롯해 궁술, 격검 등 다양한 전통 무술을 가르쳤고 1895년 일본 전통 무술을 통괄하는 단체로 대 일본무덕회 설립 후 1906년 대일본무덕회에서 무덕회류 검술형을 제정합니다.

    1920년 대일본무덕회는 검술의 이름을 검도로 바꿨는데 이는 유술을 유도로 바꾼 강도관의 가노 지고로의 행적을 따른 것으로 이전에도 검술을 종종 검도라 불렀으나 검도라는 이름이 굳어진건 대일본무덕회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1896년 경무청에서 경찰훈련용으로 격검 도구를 구입하고 훈련했다는 기록이 있어 이때부터 한국 검도의 시작으로 보기도 합니다.


  •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무술이면 참 좋겠지만, 일본 무술이지요...ㅠ

    아닌건 아니라고 해야 중국놈이나 일본놈처럼 되지 않기에....ㅋㅋ 이 검도를 받아들여서 우리나라화 한게 해동검도지요.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검법에는 우리의 것인 본국검(本國劍)과 일본의 것인 왜검(倭劍), 중국의 것인 월도(月刀)와 같이 나라에 따라 특징이 있으나, 우리나라 본국검은 신라 때부터 화랑에 의하여 전수되었다 하여 신라검(新羅劍) 또는 신검(新劍)이라 일컫습니다.


    고려 말기의 화약발명과 조선시대의 천무사상(賤武思想)으로 쇠퇴하였다가 임진왜란 뒤 훈련도감을 설치하고 군사훈련을 시작함으로써 되살아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는 정조 때 편찬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의 24반무예 중 본국검 수련이 있음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그 뒤 고종 때에 이르러 구미식 군사훈련을 개시한 뒤 자취를 감추었으나, 1896년 경무청에서 경찰훈련과 육군연무학교의 군사훈련과목에 검술과목이 채택되면서 일본식 검도가 보급되기 시작하였습니다.


    1916년에 오성학교(五星學校)에서 검도교육시설을 갖추어 일반청년층을 지도했고, 1921년에는 조선무도관이 설립되어 보급이 진척되었으며, 1927년부터는 중학교 교과목으로 채택하면서 더욱 발전하였습니다.


    그러나 광복 후 검도는 일제의 잔재라고 인식되어 쇠퇴하기 시작하였으나, 1948년 6월 3일 재경유단자(在京有段者)들이 모여 대한검사회(大韓劍士會)를 조직하여 명맥을 유지시켰으며, 1949년 5월에는 경찰상무회(警察尙武會)를 조직하고 시·도지부를 설치하였습니다. 또, 1953년 11월 20일 대한검도회(大韓劍道會)의 창립과 동시에 대한체육회에 가입하고, 12월에 각 시·도에 사범을 배치하여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검도(劍道)는 일본의 무도로, 메이지 시대 여러 일본 고류 검술 유파가 모여 검술 수련 방법 중 하나인 격검(撃劍)을 경기화하고 다양한 검술 체계를 규격화한 것을 유래로 한다.

    -출처: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