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선생은 광복 직후 귀국하였습니다. 그러나 미군정의 반대로 안타깝게도 임시정부를 대표하는 자격으로 가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 귀국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과 소련은 군정을 만들어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1945년 12월 모스크바 3국 외무장관회의 신탁 통치 문제로 반탁 운동을 전개합니다. 게다가 미소공동회가 결렬되고 통일 정부 수립이 불가능하게 전개되고, 좌우합작을 통일 정부 수립이 실패하면서 분단으로 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결국 1948년 2월 유엔소총회의 결의에 의한 단독정부가 결정되자 남북협상을 통한 통일 정부 수립 운동을 전개합니다.
결국 남한만의 단독선거인 5.10총선거에 결정되자 선거를 거부하고 통일 정부 수립 운동을 전개하다 1949년 암살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