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동학농민운동은 비록 정부와 일본군에 의해 진압되었지만 우선 토지 문제, 탐관오리의 수탈, 신분 차별 등 봉건제에 대항한 반봉건 운동입니다. 특히 전주 화약으로 합의된 폐정 개혁에 대해 정부는 교정청을 설치하고 개혁 의지를 보였으며, 신분제의 폐지, 과부의 재가 허용 등 1차 갑오개혁에 반영되었습니다.
또한 동학농민 운동은 외세의 침략에 저항한 반외세 민족 운동입니다. 비록 일시적으로 해산되었지만 이후 활빈당과 의병 운동의 기반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