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말기에 이르러 형식화, 획일화된 유학에 대한 문제의식, 당시 사회적으로 많은 폐단을 일으킨 불교와 도교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한 여러 유학자들은 불교나 도교 등에서 여러 형이상학적 요소를 차용함으로써 유학을 재해석하고, 이를 통해 유학을 불교와 도교에 비해 우위를 갖는 학문으로 만들고자 하였으며, 유학의 형식화와 획일화를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이는 송나라 시기 주돈이ㆍ장재ㆍ소옹ㆍ정호ㆍ정이 등으로 대표되는 여러 유학자들이 구체화하였고 이를 주희가 집대성하여 이후 성리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성리학은 송대 주자에 의해 정립한 새로운 유학입니다. 공맹의 유학과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주론과 심성론을 가미한 데 있습니다. 하여 성리학은 평생 유학을 공부한 이에게도 상당히 어려운 학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성리학을 과거 시험에 출제하면 그 자체 난이도가 높은 것이었습니다. 중국은 남송이 원나라에 정복되어 유학의 발달이 더디었으며 명대에는 관학화하면서 학문적 발달은 어려웠습니다. 동방의 조선에서 이이선생이나 이황에 의해 성리학은 중국 본토보다 발달하고 심화되었습니다. 이황의 성리학은 일본에 영향을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