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캉유웨이는 1888년부터 꾸준히 조정에 상서를 올렸는데 다섯번째로 올린 상서가 당시 위기를 느끼고 있던 광서제의 마음을 얻게 됩니다.
1898년 6월 11일 광서제는 명정국시라는 조서를 내려 변법을 선언하고 100가지가 넘는 개혁안을 내게되는데 개혁안의 주 내용으로는 제도국 개설, 과거제 개혁, 새로운 학교제도의 도입, 신문과 잡지 발행, 인재등용, 농업 공업 상업 진흥, 우편사업 , 육군 해군의 근대화 등이었습니다.
1898년 7월 19일 광서제는 개혁에 방해가 되는 수구세력들을 서태후의 재가 없이 숙청시키는데 이는 서태후를 중심으로 하는 수구파 대신들의 반발과 결집을 일으키게 되나 광서제가 이토 히로부미를 초빙해 고문으로 삼으려 하는 등 개혁을 멈추지 않자 수구파들은 서태후의 원조 아래 쿠데타 계획을 세우기 시작합닌다.
불온한 움직임을 감지한 광서제는 독일식 훈련을 받는 신건육군을 담당하던 위안스카이에게 감시를 맡겼으나 위안스카이는 오히려 황제와 개혁파들의 움직임을 서태후에게 보고하면서 그들을 배신하게 됩니다.
결국 9월 21일 쿠데타가 일어나 광서제는 자금성에 연금당하고 캉유웨이 등 개혀파들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집니다. 이후 서태후의 섭정령이 내려지면서 변법은 103일만에 대실패로 막을 내리는데 이것이 무술정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