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충흔 전문가입니다.
녹말과 셀룰로오스는 모두 수많은 포도당이 연결된 고분자이지만, 포도당 분자들이 서로 손을 잡는 '방향'의 차이가 결정적인 결과의 차이를 만듭니다.
우선 녹말은 알파 포도당이 동일한 방향으로 나란히 연결된 알파 결합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포도당 분자가 같은 평면상에서 일정하게 배열되다 보니 사슬이 나선형으로 부드럽게 감기는 형태를 띠며, 분자 구조가 상대적으로 느슨합니다. 우리 몸속의 아밀레이스 같은 소화 효소는 이 알파 결합의 입체적인 틈새에 정확히 결합하여 연결 부위를 쉽게 끊어낼 수 있습니다.
반면 셀룰로오스는 베타 포도당이 하나는 똑바로, 다음 하나는 뒤집힌 상태로 번갈아 가며 연결되는 베타 결합 구조를 형성합니다. 이렇게 뒤집히며 연결된 사슬은 꼬임 없이 직선형으로 길게 뻗어나가며, 인접한 사슬끼리 매우 강력한 수소 결합을 형성하여 단단한 다발을 만듭니다. 식물의 세포벽을 구성할 만큼 물리적으로나 화학적으로 매우 견고한 구조인 셈입니다.
인간의 소화 효소는 알파 결합에만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어, 구조적으로 완전히 다른 베타 결합의 견고한 사슬은 인식하거나 분해하지 못합니다. 마치 모양이 맞지 않는 열쇠를 자물쇠에 꽂으려는 것과 같아서, 셀룰로오스는 영양소로 흡수되지 못하고 식이섬유로서 몸 밖으로 배출되게 됩니다. 결국 결합 부위의 아주 작은 각도 차이가 인간에게는 '에너지원'과 '소화되지 않는 섬유질'이라는 거대한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