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조선에서 카톨릭을 금지한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조선에서는 천주교의 책을 금서로 정하고 천주교를 믿지 못하게 했는데요.

조선의 어떤 점과 맞지 않아서 카톨릭을 금지했었던 건지 궁금합니다.

    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불교뿐 아니라 도교, 무교 등도 당시 교세가 불교만큼 크지 않아 덜 부각될 뿐 조선왕조에서는 모두 억압의 대상이었습니다.

      뒤늦게 들어온 천주교도 그런 맥락에서 일정 이상 퍼지지 못하도록 박해를 가한 것입니다.
      조선시대에 천주교 박해는 꾸준히 있었는데,

      대규모 박해는 총 4번 있었으며 이 4번의 박해로 많은 천주교인이 학살당하며 순교를 하게 됩니다.
      이렇게 100여년 가까이 이어져온 조선의 천주교 박해는 조불수호통상조약으로 천주교 포교가 허용되면서 막을 내립니다.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은 기본적으로 신분제 사회였고, 왕이 유일한 지존이없습니다.

      그런데 가톨릭의 교리는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고 하나님이 유일신입니다.

      그래서 조선의 기본 이념과 완전 배치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탄압당한 것입니다.

    • 1784년 이승훈의 세례로 출발하여 1886년 한불수호조약(韓佛守護條約)으로 선교의 자유를 획득하기까지 100여 년 동안은 한국교회의 혹독한 박해기요, 더불어 가장 탄탄한 주춧돌을 마련하기 위한 시련기였다. 만민평등사상과 천주사상을 외쳤던 종교적 요인도 있지만, 타락한 세도정치의 희생물이 된 천주교는 조선왕조 말기의 숱한 권력의 변화와 더불어 수많은 박해를 받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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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의 박해는 을사년(1785) 봄, 명례방(현재의 서울 명동)에서 종교집회를 열고 있던 초기 교회의 지도자들이 추조(형조)의 관헌에게 적발됨으로써 일어났다(을사추조적발사건). 이중 집주인인 김범우는 자신의 믿음을 굽히지 않아 한국교회의 첫 순교자가 되었다. 1791년에는 조상에 대한 제사를 거부하고 신주를 불살랐던 윤지충과 권상연이 순교하였다(신해박해). 이 박해 이후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입국하고, 신도들의 열렬한 전교활동으로 교세가 크게 발전하자 이에 두려움을 느낀 정부가 천주교에 대한 탄압을 단행함으로써 1795년에는 윤유일 등이 순교하였다(을묘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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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1801년의 신유박해는 신생교회를 뿌리째 흔들어 놓았는데 주문모 신부와 '백서'사건의 황사영 등 200여 명의 신도가 순교했다. 그러나 그런 박해 속에서도 살아 남은 신도들은 다시 교회 재건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 결과 1831년에는 조선교구가 설정되었고, 이에 파리외방선교회의 선교사가 조선에 파견되었다. 1839년의 기해박해 때는 3명의 프랑스인 선교사와 '상재상서(上宰相書)'를 지은 정하상 등이 순교하였고, 1846년의 병오박해 때는 최초의 한국인 신부 김대건과 현석문 등 9명의 교우가 순교하였다. 한편, 교구 설정을 전후하여 한국인 성직자를 양성하고자 노력했는데, 박해시대 동안 김대건과 최양업이 신부로 서품되었다. 김대건 신부는 뜨거운 신앙과 뛰어난 학식으로 신도들에게 훌륭한 모범을 보여주며 장렬히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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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양업 신부는 신도들을 위한 봉사와 성직자 양성을 위해 전생애를 바쳤다. 비록 피를 흘리지는 않았지만 그의 생활은 연속되는 순교 그 자체였다. 마지막으로 1866년에 시작된 병인대박해는 근 10년간 계속된 가장 혹독한 시련으로 선교사 9명이 희생되고 남종삼 등 8,000여 명의 신도들이 순교하였다.

    •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이고 신분제 국가였습니다. 양반이 지배층으로 양반의 지배를 위협하는 위험한 사상으로 천주교를 보았습니다. 신 앞에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사상은 조선의 피지배층이 수용하게 되면 나라 운영과 양반지배가 무너질 수 있다고 본 것이죠. 성리학은 조상공경과 충, 효가 핵심인데 제사를 부정하는 등의 천주교는 공존할 수 없는 배격해야만 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병인박해 등 몇차례 천주교신자를 처형하는 등 철저히 부정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