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율이 원균에게 곤장을 친 이유가 무엇인가요?
권율이 병졸들이 다 보는 앞에서 선조가 빽으로 있는 원균의 곤장을 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떤 이유때문에 원균은 곤장을 맞았나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권율이 원균에게 곤장을 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군요.
원균이 곤장을 맞은 이유는 거짓 기밀을 보고해서라고 합니다.
원균은 부임 이후 이순신의 수군 단독출병 불가의 판단이 옳았음을 알고 말을 바꿔 수륙 병진을 주장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원균은 조선의 군사동원력이 17만명을 모은 임진년보다 크게 떨어진 상황인데도 30만은 동원할 수 있다고 하고, 섬인 가덕도까지 육군이 몰아치면 된다는 현실을 무시한 주장을 했습니다.
이에 권율은 비밀 장계를 올려 원균의 주장대로 육군을 움직이긴 어려움을 전하였습니다. 수군에게
원하는 것은 수군의 전면적인 부산포 진격이 아닌, 무력시위를 전개하여 일본이 보급선 유지에 불안감을 가지게 하는 것이었으나 원균은 이조차도 하지 못하다가 원균이 부임전과는 달리 이런저런 핑계로 칠천량으로 출동하지 않자 원균을 곤장으로 다스렸습니다.
권율에게 곤장을 맞은 후 원균은 전 병력을 끌고 출전하여 칠천량 해전에서 참패를 당하고 그 전투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권율이 원균에게 곤장을 쳤던 이유는 조정을 기망한 죄였습니다.
원균이 자신의 평가가 깎일 원인을 제공했는데 간첩 요시라와 내응한 김응서, 그와 한패인 윤두수, 윤근수 형제는 이순신이 부산포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아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죄를 뒤집어씌우는데에 혈안이 되어있었는데 정작 이순신은 출진을 했고, 김응서와 협의 후 회군하던 중 아군 병력이 납치되자 가덕도로 진군해 구출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윤근수, 윤두수 형제는 이런 점은 무시한 채 무조건 이순신이 왜군을 무찌르지 않으려고 나서지 않았다고 우겼고 선조는 이를 이순신을 내칠 좋은 기회라 여기고 받아들였으며 원균은 삼도수군총제사 자리가 탐이 나 윤두수, 윤근수 형제의 의견을 적극 지지, 결국 이순신은 삭탈 관직당하고 원균이 후임 삼도수군통제사로 부임했는데 막상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자 이순신과 같은 논리로 출진을 거부, 원균도 부산 점령이 무리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공격을 조금이라도 감행했던 이순신과는 정반대로 부산포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습니다.
부산 공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이순신을 떨어트리기 위해 선조에게 '내가 부산을 치겠다' 허언을 한 것,
권율로서는 처벌할 근거가 충분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권율이 출전을 요구하며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원균에게 매를 친것은 사실입니다.
권율이 조정의 윽박에 못이겨 원균을 출전시킨 것입니다
원균은 권율의 윽박에 못이겨 출전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균은 아군의 판옥선을32척이나 잃는 패전을 했고 원균의 패배에 대한 소식이 전해지자 도원수 권율 은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을 불러다가 군사들이 보는 앞에서 곤장을 때렸습니다. 곤장 맞는 권율 은 곤장을 치면서 말하기를, "국가에서 너에게 높은 벼슬을 준 것이 어찌 한갓 편안히 부귀를 누리라 한 것이냐? 임금의 은혜를 저버렸으니 너의 죄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다." 라며 때렸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권율이 원균에게 곤장을 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원균은 이순신을 모함하고 자신이라면 부산포를 수복할 수 있다고 주장해 그 직위를 이어받았지만, 막상 통제사가 되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출전을 거부하는 이중성으로 조정을 능멸했기 때문입니다.
원균은 또한 칠천량 해전에서 패배하여 조선 수군의 전력을 크게 잃게 만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권율은 원균을 심하게 질책했고, 결국 곤장을 쳐서 파면했습니다.
권율은 원균을 파면한 후, 이순신을 다시 통제사로 임명했습니다. 이순신은 칠천량 해전에서 패배했지만, 이후 명량해전에서 대승을 거두고 일본군을 물리쳤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 추천 부탁드려요 ~좋은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