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이 나주까지 피난을 간 배경은 거란의 침입으로 개경이 함락되었기 때문입니다. 1009년 강조가 정변을 일으켜 병약하고 후사가 없던 목종을 폐위, 시해하고 왕족이었던 현종(대량원군)을 옹립하였습니다. 1차 침입 당시 서희의 담판으로 송과의 단교 약속을 했으나 이를 이행하지 않자 침략 구실을 잧던 거란은 신하가 군주를 시해한 죄를 문제삼아 고려를 침략하였습니다.
북방의 강조군이 통주 전투에서 패배해 사로잡히고 거란군이 개경으로 빠르게 진격하자 수도 방어가 불가능했습니다. 강감찬 등의 건의에 따라 항복 대신 개경을 버리고 남쪽으로 몽진하여 장기 항전을 도모하라라는 건의를 채택하여 현종은 광주, 공주, 전주 등을 거쳐 나주까지 피난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