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초를 조작한 사관은 참형에 처해졌습니다. 어느 시대보다 역사를 중시했던 조선은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의 선발과정도 엄격했습니다. 사관의 자리가 비면 춘추관의 당상으로 하여금 과거에 급제한 자로 해당 직책의 품계에 맞는 자를 모아 시험을 보게하였습니다. 조선 최대우 사초 조작 사건의 발단은 세조의 아들인 예종의 즉위초 부왕인 세조의 기록이 궁금하여 사초를 내전으로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예종은 이후 사초실명제를 시행하도록 하였고 실랑이 끝에 성사시키게 됩니다. 사초 조작사건은 민수가 쓴 사초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한명회가 보니 사초 여러군데 부자연스럽게 고쳐진 흔적이 보였던 것입니다. 의금부가 집에 들이닥치자 민수는 자결하려했으나 아내의 만류로 그쳤고 포박당해 궁궐로 압송당합니다. 국문을 한 후 20여명의 대신들의 기록을 조작했음을 알고 취조한 후 참형은 면하고 제주도로 유배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되어 민수의 옥이라고 합니다.